대통령이 서슴지 않고 금융시장 개입 발언을 쏟아낸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관치금융’의 부작용이 넘쳐나는데도, 그 위험성이 일상처럼 굳어져 문제의식이 희미해진 지 오래다.
그러나 대통령의 ‘금융계급제’ 언급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금융시장의 기본 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국정감사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인위적 금리 조정이 금융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총재는 “워낙 문제가 많아서 일일이 말하기 어렵다”고만 했지만 바탕에 깔린 메시지는 분명하다.
금융시장에서 ‘고신용자 저금리, 저신용자 고금리’는 차별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합리적인 가격 책정이다. 한 신용평가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신용등급 1등급(900~1000점)의 장기연체가능성은 0.10%다. 저신용자(700점대 이하)를 포함한 전체 평균(1.27%)의 13분의 1 수준이다. 반대로 말하면 저신용자가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을 확률이 고신용자보다 13배나 높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저신용자가 곧 저소득자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용점수는 소득 수준만이 아니라 그간 누적된 거래 실적, 연체 이력, 부채 관리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저소득층 고신용자도 많다. 고소득에도 방만한 생활로 저신용자가 된 경우도 적지 않다. 저신용자에게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것이 곧 서민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고신용자 금리를 올려 저신용자 금리를 낮춰주자는 제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실하게 신용을 관리해 온 국민에 대한 역차별이기도 하다.
해외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외려 금융 선진국은 시장 원리를 철저히 따른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2022년 바이든 정부는 연방 학자금 대출에 한해 1인당 최대 1만~2만 달러까지 탕감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위헌판결로 무산됐다. 학자금이라는 특정 목적에 한정된 채무 조정조차 미국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시아의 금융허브가 되겠다는 우리 정부의 목표가 요란한 구호인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교훈으로 삼을 일이다.
물론 금융취약계층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은행권도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최근 5대 금융(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2030년까지 생산적·포용금융에 향후 5년간 총 508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중 포용금융 비중은 100조 원에 달한다.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와 저금리 지원 프로그램이 핵심이다.
은행권이 더욱 두텁게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충분한 수익 기반부터 마련해 줘야 한다. 현재 은행권은 과도한 규제로 인해 수익성이 저하되고 있다. 금산분리, 칸막이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은행들이 새 수익원을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 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선한 의도일 수 있다. 하지만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국민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무책임한 이들이 혜택을 얻는 상황이 굳어지면 시장 질서가 붕괴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했다.
금융시장의 기본 원리를 훼손하는 포퓰리즘은 국가시스템 전체를 위협해 결국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