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트에서 과자 한 봉지, 우유 한 통, 세제 한 병을 고를 때 우리는 포장에 적힌 ‘중량 500 g’, ‘용량 1 L’ 표시를 보고 상품을 선택한다.
하지만 포장을 열기 전에는 실제로 그만큼 들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처럼 포장을 개봉하지 않고는 양을 증감할 수 없는 제품 중, 무게나 부피, 개수 등을 표시해 판매하는 상품을 ‘정량표시상품’이라 부른다.
정부는 소비자가 믿고 정량표시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포장에 내용물이 얼마인지 명확히 표시토록 하고 실제 내용물이 포장에 표시된 양보다 허용오차를 벗어나서 적게 포장되어서는 안되도록 관리를 하고 있다.
현재 곡류, 과자류, 세제류 등 27개 품목이 정량표시상품으로 지정되어서 관리되고 있으며 관련 시장 규모만도 약 400조 원에 이를 정도로 소비자 생활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이 제도는 소비자 보호와 공정한 상거래를 지탱해 주는 핵심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그간 사업자들이 정량표시상품 제도를 얼마나 준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시중에 판매되는 정량표시제품을 무작위로 구입해 검사하는 ‘시판품 조사’를 실시해 왔다.
정부가 최근 10년간 시판품 조사를 실시한 결과, 법에서 정한 허용오차를 초과한 제품의 비율은 1.1%에 불과했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표시된 양보다 평균적으로 적게 담긴 제품이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살짝 덜 담는 소위 ‘양 줄이기(슈링크플레이션)’ 관행이 나타난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해외에서도 공통적인 고민이었다. 이에 국제법정계량기구(OIML)는 상품의 ‘평균량’이 표시량 이상이 되도록 관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쉽게 말해, 여러 개의 제품을 무작위로 검사했을 때, 평균적으로는 표시된 양 이상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은 이미 이 기준을 자국 제도에 반영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개별 제품이 허용오차를 벗어났는지만 규제하고 있고, 평균량이 표시된 양보다 작아서는 안된다는 규제는 없었다.
이에 정부는 정량표시상품 제도를 국제 기준에 맞게 개선하기 위해 ‘계량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기존의 개별 제품에 대한 ‘허용오차’ 기준에 더해서, 포장된 양은 평균적으로 표시량과 같거나 커야 한다는 ‘평균량 요건’을 추가로 도입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느끼는 공정성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관리 대상을 기존 27개 품목에서 ‘길이·질량·부피 등 단위로 표시되는 모든 상품’으로 확대한다. 반려동물용품이나 건강기능식품처럼 최근 소비가 급증하는 품목들도 관리 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한 것이다.
시판품조사 규모 또한 대폭 늘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계획이다. 현재 연간 1000개 제품 정도를 조사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1만 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는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기업에는 스스로 품질을 개선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아울러 조사·분석·교육·홍보 등을 전담할 전문기구를 지정해 제도의 체계적 운영을 강화할 것이다.
정량표시상품 제도는 믿을 수 있는 시장 질서를 지탱해주는 ‘보이지 않는 상거래 기반’이다. 소비자는 표시된 양을 믿고 물건을 살 수 있고, 기업은 정직한 양으로 서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양 줄이기’ 같은 불신 요소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공정한 상거래 환경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