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채권시장 외국인 투매..은행권 건전성 관리 부담도 커져
“근본적 해결책 펀더멘털 강화”
원·달러 환율 속등은 머니무브(자금이동)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안 그래도 안전자산인 달러화가 선호됐고, 미국 증시가 활황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한국보다 호황인 미국 경제는 자금 유출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됐다. 소위 서학개미로 일컬어지는 개인투자자는 물론 고래로 표현되는 큰손인 국민연금 등도 수익률을 좇아 해외로 빠져나갔다.

사상 최고 경상수지 흑자라지만 내용도 좋지 않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올 들어 9월까지 827억7000만 달러를 기록해 같은 기간 기준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수출은 같은 기간 1.0% 상승에 그친 데 반해 수입은 2.1% 줄었다. 결국 수입이 더 많이 줄어든 데 따른 불황형 흑자라는 점에서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노출한 모습이다.
한미 관세협상 불확실성도 없지 않았다. 타결을 이뤄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민간기업 투자를 제외하고도 매년 20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의 현금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업계 리서치센터장은 “(환율 상승은) 공급망 재편, 한미 간 성장률 및 금리차 역전 등 펀더멘털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이택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펀더멘털 강화”라며 “해외에서 원화 수요가 발생하게끔 해 달러화가 국내에 공급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미 국내 주식과 채권시장에 이런 경고음이 켜졌다. 최근 4200선을 돌파하며 축포를 쐈던 코스피가 3800선까지 하락한 것도,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가 국고채 3년물의 경우 3%에 육박하고, 10년물의 경우 3.3%를 넘어서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한 것도 모두 외국인의 투매가 자리하고 있다.
이진우 GFM 투자연구소장은 “환율과 국채수익률이 오르는 상황에서 나홀로 코스피 5000이라는 환상에 뒤늦게 투자에 나선 곳이 많아 수급이 된통 꼬였다”고 분석했다. 오건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일본도 인플레 압력에 엔화약세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경우 원화도 강세 모멘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한미 관세협상도 관세율이 어떻게 내려오느냐가 포인트다. 특별법 등을 통한 빠른 통과로 명확화한다면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키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고환율이 이어지면 외화표시 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불어나 은행의 위험가중자산(RWA)이 증가하고 이는 곧 보통주자본비율(CET1) 같은 핵심 건전성 지표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CET1은 은행이 보통주자본으로 위험자산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은행의 자본 건전성을 평가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하는 항목이다. CET1이 낮아지면 손실흡수 능력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배당·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계획에도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은행들이 가장 민감하게 관리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환율이 10원 오를 때 CET1이 약 1~3bp(1bp=0.01%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자본비율 관리 부담이 누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중소기업 지원 기조는 이어가되 고환율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는 자본비율 관리 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