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왼손잡이와 ‘메밀꽃 필 무렵’

입력 2025-1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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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많고 많은 직업 중에 어쩌다가 나는 소설가가 되었을까. 6·25가 일어난 지 아직 십 년도 지나지 않은 1950년대 후반 대관령 동쪽 아래 산골에서 태어났지만 다행스럽게도 집에 읽을거리가 흔했다. 집에 항상 책이 그득했다. 마을에서 시오리쯤 떨어진 강릉시내 교육기관에 근무하는 아버지가 사 온 책들이었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읽는 책이었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간마을에 해가 떨어지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책을 보는 일 말고는 없었다. 아버지가 읽기 위해 구입한 책이지만 앞으로 그 책을 읽을 자식들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런 산골 마을에서 남보다 일찍 소설책을 접하면서도, 또 가을이면 메밀을 수확하고 그걸로 메밀국수와 메밀묵을 해먹으면서도 같은 강원도 작가인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은 것은 다른 작품들보다 늦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이효석 선생의 작품 가운데 먼저 읽었던 것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낙엽을 태우며’라는 수필이었다.

어느 여름날 ‘메밀꽃 필 무렵’을 보았는데, 이게 내게는 바로 가슴에 와 꽂힐 정도로 재미있었다. 아마 내가 왼손잡이여서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지금은 과학적으로 왼손잡이를 유전이라고 여기지 않지만, 어머니를 닮아 왼손잡이인 나는 그 시절 그것을 유전처럼 여기고, 소설 속의 허생원과 동이의 관계 역시 그렇게 여겼던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은 다른 소설보다 늦게 보았어도 이효석 선생이 태어난 봉평은 일찍부터 알았다. 내가 태어난 강릉과 이효석 선생이 태어난 봉평 사이엔 동서의 관문과도 같은 대관령이라는 큰 산이 있다. 어린 나로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곳 봉평마을 우체국에 일하던 동네 누나가 있었다.

그 누나를 찾아 동네의 다른 누나가 봉평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하는데, 1960년대 후반 우리마을과 마찬가지로 봉평도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전깃불 대신 남폿불을 밝힌 봉평다방 얘기를 들었다. 본 것이 아니라 단지 전해 듣기만 한 이야기인데도 남폿불을 밝힌 봉평다방의 저녁 풍경이 어린 소년에게 퍽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이효석 선생이 쓴 ‘메밀꽃 필 무렵’을 패러디하여 ‘말을 찾아서’라는 작품을 쓸 때에도 봉평 우체국에 근무하는 동네 누나 이야기와 그 누나를 따라 남포다방에 들어가 본 이야기를 한 것도 그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였다.

그 무렵 나는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노새를 끌던 친구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강릉 시내에서 노새를 부리며 마차를 끌던 아버지가 참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어떤 때는 아버지가 끄는 마차와 마주쳐 지날 때도 있었는데 그때 모른 척했던 것이 두고두고 마음 아프다고 했다. 나의 소설은 친구의 그런 이야기를 기둥 줄거리로 하여 쓴 소설이었다.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은 나귀 등에 짐을 싣고 봉평이며 대화 제천 장을 찾아다니는 장돌뱅이의 이야기고 나의 작품 ‘말을 찾아서’는 노새를 끌고 봉평 산판장으로 떠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소년의 이야기였다.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은 1936년에 쓴 작품이고, 나의 소설은 그보다 60년 후에 쓴 작품이었다.

그때는 봉평에 이효석 선생의 호를 딴 ‘가산문학공원’이 반듯하게 조성되었을 때였는데, 그렇게 맺은 작품의 인연이 깊어져 몇 년 뒤 제1회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시대를 달리해 태어났어도 이만하면 작가 간의 참으로 깊은 인연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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