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의 벽 앞에 선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읽다 보니, 경제]

입력 2025-11-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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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교보문고)
(사진제공=교보문고)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넘기 힘든 장벽을 마주한다. 바로 계층과 경제적 배경이다. 이민진 작가의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Free Food for Millionaires)'은 장벽 앞에서 좌절하고 방황하다 마침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는 청춘의 이야기다.

명문대와 월스트리트의 문은 열렸지만…

주인공 케이시 한은 뉴욕 퀸즈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한국계 이민 1세대 부모 밑에서 자랐다. 부모의 희생 덕분에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그 배경이 케이시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못했다. 케이시는 부모가 바라는 '안정적이고 전통적인 성공'의 경로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자 했다.

졸업 후에는 성공의 상징이자 금융 자본주의의 심장인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에 입사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해고된다. 월스트리트의 세계는 학벌만으로는 통과하기 어려운, 부와 배경이 구축한 '보이지 않는 계층 장벽'으로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독립을 꿈꾸던 케이시는 부모의 도움을 거부하고 퀸즈의 낡은 아파트로 돌아가 고단한 시간을 보낸다. 불안정한 심리를 달래기 위해 과도한 쇼핑에 빠지고, 이는 곧 빚으로 이어져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이후 케이시는 자신이 가진 골프 재능을 활용해 상류층의 사교계와 비즈니스 세계에 다시 발을 들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부유층이 누리는 물질적·정신적 여유를 목격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 사이에서 더욱 깊은 혼란에 빠진다.

소설은 케이시가 돈, 사랑, 가족 관계 속에서 겪는 갈등과 실패를 따라가며, 그녀가 결국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의 기준과 가치를 찾아가는 고독하고 복잡한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좋은 대학'으로도 못 넘는 '출신'이라는 장벽

케이시는 최고 학벌이라는 능력을 갖추고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본과 사회적 연결망의 부족 때문에 월스트리트 주류 사회에 쉽게 편입되지 못한다. 소설은 학력이 능력주의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도, 실제로는 선대가 축적한 부와 기득권 인맥이라는 비공식적 자본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짚으며 계층 대물림의 현실을 드러낸다.

라즈 체티(Raj Chetty)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팀의 'Opportunity Insights' 분석에 따르면, 미국 상위 1% 소득을 가진 부모를 둔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상위 1%에 속할 확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무려 77%나 높다. 또 2017년 발표된 ‘The Role of Colleges in Intergenerational Mobility’ 보고서에서도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가구 소득 상위 20% 학생들에게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교육적 성공이 경제적 배경과 쉽게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따라서 케이시의 좌절은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선택의 실패가 아니라, 부의 세습이 학력의 힘마저 압도하는 현대 자본주의 구조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부가 아닌 ‘자기 확신’으로 살아남는 법

케이시의 여정은 결국 ‘부자가 되는 법’이 아니라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녀가 부와 성공, 자립 사이에서 계속 미끄러지는 모습은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자본—가족 배경, 사회적 연결망, 초기 자산—이 현실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는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케이시는 자신이 가진 재능과 선택을 끝까지 붙들며,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삶의 속도와 방식을 찾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소설은 백만장자만 누릴 수 있는 '공짜 음식'처럼 태생적 특권이 없어도, 자신의 경제적 조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조정해 나간다면 '작지만 단단한 독립'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화려한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잃지 않는 자기 확신과 주체성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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