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부장, 서울 자가, 명문대생 자식.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모든 조건을 갖춘 김 부장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그 화려한 타이틀 뒤에 숨은 중년 직장인의 불안과 허무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꼽은 성공의 조건은 행복한 가정, 사명감 혹은 정신적 소명을 갖고 있는 일, 그리고 돈이었다. 김 부장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듯 보인다. 그의 이력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을 증명하는 ‘완벽한 조합’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묘한 짠함이 밀려온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김부장이 속으로는 끝없는 불안과 외로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의 불안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드러난다. 후배의 가방보다 자신의 가방이 더 비쌀 때 잠시 기뻐하지만, 후배가 자신보다 더 비싼 아파트에 산다는 걸 알게 되면 곧바로 좌절한다. 이 모순적인 감정의 진폭은 비교를 통해서만 자신을 확인하는 삶의 불안을 보여준다.
KDI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인은 유독 비교 성향이 강하고, 이는 물질주의적 가치관과 깊이 연결돼 있다고 한다. 김 부장은 그 전형이다. 자신의 가치를 스펙과 재산으로 측정하며 하루를 버틴다.

직장에서는 꼰대 상사, 집에서는 독불장군. 김부장은 누구에게도 진심을 내보이지 못한 채 고립된다. 가족과 직장 후배를 위해 자신을 깎아내리지만 정작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
김부장의 행동은 '욕심'이 아니라 '생존'이다. 배우 류승룡은 인터뷰에서 “김부장은 비루하고 서툴지만 자기 자리를 악착같이 지키려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김부장은 성실과 근면이 미덕이던 시대를 통과하며 ‘돈과 지위가 곧 성공’이라는 기준을 내면화한 세대다. 그의 언행은 구식일지 몰라도 그 속에는 시대가 각인한 상처와 책임감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원작 소설의 작가 송희구는 “김부장과 송과장은 현실 직장인의 고민을 디테일하게 녹여낸 인물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김부장을 단순한 꼰대로 소비하지 못한다. 그를 풍자적인 동시에 비극적인 인물, 그리고 묵묵히 버텨온 한 ‘가장’의 얼굴로 본다.
겉으론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그 안엔 희생과 책임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김부장을 미워하면서도 끝내 연민을 거둘 수 없다. 그의 삶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곁에도 김부장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