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목을 오가는 쥐와 집주변과 학교 등에 나타나는 들개와 멧돼지. 부모님께 들었던 그때 그 시절 이야기라고요? 아니면 과거를 재현한 드라마 속 풍경이라고요? 아니요. 2025년 현재 벌어지는 현실입니다.
서울 도심의 골목에서는 낮에도 쥐가 지나가고 대학 캠퍼스에는 들개가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는데요. 지방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멧돼지가 출몰해 재난문자가 발송되고 야산과 밭 주변에서는 진드기가 매개하는 감염병을 걱정해야 하죠.

서울시의 ‘쥐 민원’은 5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2020년 1279건이던 쥐 출몰 신고는 2024년 2181건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7월까지 이미 1555건이 접수됐는데요. 쥐가 눈에 띄게 늘어난 이유는 폭염, 폭우, 재개발이라는 세 가지 요인이 동시에 벌어지면서죠. 폭염으로 하수도 내 온도가 상승하면서 쥐가 더위를 피해 지상으로 진출했고요. 폭우로 하수구가 침수되고 먹이가 유실되면서 시장과 음식점, 쓰레기 수거장으로 이동이 늘었습니다.
거기다 재개발 공사로 은신처가 사라진 것도 결정적인 원인인데요. 소음과 진동에 쫓긴 쥐들이 서식지를 잃고 주변 생활권으로 이동하면서 광화문과 강남, 마포 등 도심 곳곳에서 낮 시간대 목격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는 쥐가 인간의 소음과 냄새를 학습해 사람을 피하지 않게 된 거죠. 본래 야행성이던 쥐가 낮에도 활동하는 ‘주행성 도시 쥐’로 변하고 말았는데요.

쥐의 배설물은 렙토스피라증이나 신증후군출혈열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도시 위생이 감염병과 직접 연결되는 상황이죠. 또 쥐 개체가 늘어나면 그 몸에 붙어사는 진드기도 함께 따라오는데요. 질병관리청은 야외에서 채집한 등줄쥐를 분석한 결과 귀와 항문 부위에서 털진드기와 참진드기가 다수 검출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진드기들은 쓰쓰가무시병과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을 옮기는데요. 쥐의 몸을 떠난 진드기가 사람의 피부나 의복에 달라붙어 감염을 일으키는 구조입니다.
감염 위험은 가을철에 특히 높은데요.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쥐를 매개로 하는 감염병 유행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라”는 당부가 나왔죠. 신증후군출혈열과 렙토스피라증은 법정 제3급 감염병으로 발생 시 24시간 내 신고가 의무인데요.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신증후군출혈열 환자는 109명, 렙토스피라증은 23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환자 수는 지난해보다 감소했지만, 도심 내 쥐 민원 급증에 비하면 감염병 확산 가능성은 여전히 큰 상황이죠.
이에 서울시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구서 체계를 도입했는데요. 약제로 유인된 쥐가 장비 안으로 들어가면 무게를 감지해 자동으로 문이 닫히고 포획 즉시 통합상황실로 신호가 전송됩니다. 이후 방제 요원이 현장에 출동해 쥐 사체를 수거하는 방식이죠. 장비 한 대당 월 2만5000~5만 원의 비용이 들지만 다른 동물의 오포획을 막고 위생 처리가 가능해 25개 자치구 전역으로 확대 설치를 추진 중입니다.

그런가 하면 서울대 관악캠퍼스 주변은 지금 ‘들개의 땅’이 됐는데요. 지난달 27일 오후 관악학생생활관 인근에서 들개 6마리가 포획됐습니다. 현재 이 일대에는 30여 마리의 들개가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서울대는 포획틀 8곳을 운영하며 마취총 포획을 병행하지만, 근본적 해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죠. 이전에도 관악산 인근에 들개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종종 있었는데요.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개발 과정에서 버려진 반려견들이 산속으로 들어가 새끼를 낳으며 2세대 들개가 형성됐다”며 “날이 추워지면 먹이를 찾아 민가 쪽으로 내려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야생화된 들개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반려견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더군다나 사람을 피하지 않고 쓰레기 더미나 주차장 주변을 배회하며 공포감을 불러오고 있죠. 관악구청은 “들개에게 먹이를 주지 말고, 반려견 산책 시 각별히 주의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결국, 사람에게 버려진 개가 들개가 되고 들개가 다시 사람을 위협하는 악순환이 반복된 거죠.

이번엔 멧돼지입니다. 지난달 31일 밤 충북 충주시 호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멧돼지 4마리가 출몰했는데요. 소방대가 출동했을 때 한 마리는 차량에 치여 죽었고 나머지 세 마리는 산으로 달아났죠. 이보다 이틀 전에는 부산 해운대 산책로와 전북 전주 도심 도로에서도 잇달아 목격됐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전라일보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9월까지 도내에서 포획된 멧돼지는 총 3만2439마리에 달하는데요. 2020년 4519마리에서 2024년 8362마리로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올해도 이미 4000마리에 육박하죠.

멧돼지의 도심 출몰은 주로 가을과 겨울에 집중되는데요. 10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는 짝짓기 시기로 수컷이 암컷을 찾아 무리를 떠나 단독 이동하며 활동 범위를 넓힙니다. 교미가 끝난 암컷은 둥지에 머물지만, 수컷은 먹이를 찾아 도심까지 내려오기도 하죠. 부산야생동물보호협회 최인봉 단장은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겨울 도심에 나타나는 멧돼지는 번식기를 마친 수컷일 가능성이 크다”며 “먹이 부족과 온난화가 겹치면서 도심 출몰이 더 잦아졌다”고 했는데요. 사냥개 투입이 법적으로 제한되고 산림 훼손이 심화되면서 개체 조절은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죠. 지자체는 재난문자를 발송하며 “야간 외출을 자제하라”고 당부했지만 도심과 산의 경계는 이미 희미해졌습니다.
쥐·진드기·들개·멧돼지의 출몰은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모두 한가지 공통된 배경 위에 서 있는데요. 기후변화와 도시 확장, 그리고 인간의 방치죠. 폭염은 하수구의 쥐를 밀어 올렸고 폭우는 들개와 멧돼지를 산에서 몰아냈습니다. 따뜻해진 겨울은 진드기와 새끼 멧돼지의 생존율을 높였는데요. 또 재개발은 서식지를 없앴고 쓰레기는 풍부한 먹이가 됐죠. 사냥과 포획은 제약받았으며 버려진 반려동물은 야생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인간이 사는 도시는 이들에게 더는 두려움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된 거죠.

이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데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따르면 미국·일본·네덜란드 등 16개 도시 중 11곳에서 지난 10년간 쥐 개체 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했습니다. 워싱턴D.C는 390%나 늘었고, 도쿄 신주쿠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이 쥐에 물리는 사고까지 발생했죠. 연구진은 “쥐 개체 수 증가는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라 기후변화와 도시 구조 변화를 반영하는 생태적 지표”라고 분석했습니다.
도시가 커질수록 자연은 밀려나지만 동시에 도시 안으로 되돌아오는데요. 사람이 자초한 이들의 공습, 단순한 방역을 넘어 장기적인 대책을 고심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