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경주 선언’이 띄운 문화창조산업

입력 2025-11-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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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 한국영화학회장

APEC, 신성장동력 핵심가치 확인
디지털과 AI가 이끄는 혁신에 주목
지재권등 창작자보호 과제로 남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천년 고도 경주에서 막을 내렸다. 각국 정상은 ‘경주 선언’을 채택했다.

올해의 주제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지속 가능한 내일’이었다. 이 주제를 논의하기 위해 연결, 혁신, 번영이라는 세 가지 중점 과제가 공동의 목표로 설정되었다.

여러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경주 선언’은 문화창조산업을 강조한다. 반가운 마음에 선언문을 찾아 읽어 본다. 아닌 게 아니라 문화창조산업은 수많은 의제 가운데 단연 눈에 띄었다.

APEC 선언문에 이처럼 문화창조산업이 비중 있게 다뤄진 건 처음이라고 한다. 영국 정부가 1998년 처음 정의한 문화창조산업이 이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를 주도하는 핵심 기제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와 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선언문은 문화를 경제 성장의 새로운 엔진으로 분명하게 인식한다. 문화창조산업이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저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문화창조산업이 회원국 사이 인적 교류를 촉진하고, 상호 이해와 존중을 증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APEC은 무역, 투자, 관세 등 거시 경제에 집중해 왔다.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 논의 등이 그 사례다. 하지만 이제 소프트 파워의 핵심인 문화가 경제 성장의 실질적인 동력임을 선언한다. 문화창조산업이 역내 경제와 문화 교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는 확인도 덧붙인다.

선언문은 문화창조산업을 디지털과 인공지능 등 미래의 기술과 연결한다. 디지털과 인공지능 기술이 제작을 비롯해 유통, 소비 전반에서 창의성을 촉진하고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혁신’이라는 의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인공지능이 생산성 향상과 경제적 번영을 통해 세계 경제를 재편할 잠재력을 가졌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창조산업은 인공지능 기술이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고 그 파급력을 시험할 핵심 영역이 되었다. ‘경주 선언’은 과학기술혁신(STI) 분야의 협력과 연구개발을 강조하면서 이런 인식을 뒷받침한다.

APEC이 문화창조산업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인정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이 가져올 ‘빛’ 이면의 그림자에도 주목해야 한다. 선언문은 “강력한 지식재산권 보호의 중요성”을 확인한다. 동시에 인공지능 전환에 힘을 싣는다. 다만 두 가치 사이의 치명적인 모순과 충돌에 관해서는 침묵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필연적으로 기존 창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삼는다. 수많은 작가, 화가, 음악가의 데이터가 인공지능 모델 구축에 사용된다. 선언문은 데이터 흐름 촉진과 디지털 거래의 신뢰 강화를 말한다. 하지만 이 신뢰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인공지능 기술 기업을 위한 신뢰인가, 그렇지 않으면 창작물이 무단 도용될까 두려워하는 창작자를 위한 신뢰인가.

선언문은 인공지능의 보안성을 비롯해 접근성, 신뢰성, 안정성을 제고하자고 촉구한다. 하지만 정작 창작자의 권리에 대한 안정성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인간 중심적인 접근을 통해 모두가 인공지능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고 강조하지만, 이 ‘인간’ 속에 문화창조산업의 근간인 창작자의 자리는 분명하지 않다.

영국 정부는 일찍이 문화창조산업을 “개인의 창의성, 기술, 재능에 기반을 두어, 지식재산의 생성과 활용을 통해 부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산업”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가 ‘개인의 창의성, 기술, 재능’과 ‘지식재산’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이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소외된 창작자들의 비극이 계속되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주 선언’이 문화창조산업에 관한 대화와 협력을 끌어낸 것은 분명한 진전이다. 문화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임을 천명한 일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화창조산업의 성장은 ‘강력한 지식재산권 보호’라는 토양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동시에 인식해야 한다. 기술 혁신과 창작자 보호는 양립해야만 한다. ‘인공지능 이니셔티브’는 ‘창작자 권리 보호 이니셔티브’와 함께 가야 한다. 이것이 ‘경주 선언’이 우리에게 남긴 무거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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