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전 장관 “관점 바꿨더니 새로운 길...AI 시대 ‘마더 리더십’이 이끈다”[K 퍼스트 우먼⑧]

입력 2025-11-12 05:3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본 기사는 (2025-11-11 17:3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지상파방송 첫 여성 앵커·특파원서 4선 의원·장관까지

지상파 방송사 첫 여성 앵커, 제1 야당 첫 여성 원내대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첫 여성 위원장, 중소벤처기업부 첫 여성 장관. 대부분의 이력에 ‘여성 최초’가 수식어로 붙는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은 치열한 삶의 표상처럼 다가온다. 그의 이런 궤적은 창간 15주년을 맞아 본지가 준비한 ‘K 퍼스트 우먼 : 한국 경제의 최초를 연 그녀들’ 시리즈 기획 취지에 고스란히 부합된다.

10일 서강대학교에서 만난 박 장관은 인터뷰 내내 ‘마더(mother) 리더십’을 강조했다. 엄마의 마음처럼 품어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되, 상대방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방법론은 명쾌한 디렉션(지시)과 공감대 형성이다. 이것이 바탕이 된다면 분명히 ‘다음 세대의 길을 닦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관심사가 기술 패권에 쏠린 이유도 더 나은 미래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다.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연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최근 ‘반도체 주권국가’ ‘AI, 신들의 전쟁> 등 저서를 잇달아 펴냈다. 매사에 뜨거운 그의 열정은 40여년 전 처음 앵커를 맡았던 그때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대담 : 석유선 생활경제부장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마태오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조현호 기자 hyunho@)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마태오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조현호 기자 hyunho@)

여성다움의 공통분모는 결국 ‘마더 리더십’입니다. 상대의 자리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원을 어디에 배분할지 명확히 결정하는 힘이죠.

박 전 장관이 여성 최초 지상파 방송 앵커, 그것도 ‘9시 뉴스’ 메인 앵커가 된 이유는 간명했다. 바로 '성실함'이었다. MBC 재직 당시 조직 내 여성이 적어 유독 희귀성이 돋보이기도 했지만, 그는 단 한 번의 지각도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2000년대 전까지 여성이 자신의 커리어(경력)를 인정받으려면 보통 남성의 두 배는 일해야 했다. 조직에 여성이 적다 보니 희귀한다는 게 도움 될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작은 흠결이나 실수를 하면 과하게 확대됐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은 “그래서 앵커를 맡을 당시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 더욱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회상했다.

◇점을 선으로, 선을 면으로...하루 12시간씩 일하며 고군분투

그의 첫 번째 ‘퍼스트’는 1980년대 초 시작됐다. 야간 통행금지 해제 직후 밤 11시 50분대에 신설된 심야 뉴스 ‘MBC 뉴스데이트’를 여성 단독 앵커로 처음 맡았다. 그는 “밤에 여성이 뉴스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화제였다. 9시 뉴스에서 빠진 ‘꺼끌꺼끌한’ 꼭지들을 모아 내보내다 보니 시청률이 급등했고, 다음 날이면 시말서를 썼다. 그래도 또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현장 기자와 앵커를 동시에 소화하며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는” 체험을 몸으로 축적했다고 했다. 그는 “마감 뉴스를 소화하다보니 새벽 1시쯤 퇴근을 했는데, 당시 낮에는 현장 기자로도 일했기 때문에 12시간여를 넘게 일했다. 물론 아주 힘들었지만, 그 노력이 축적이 되면서 기자로서의 성장 과정에 굉장한 밑거름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앵커 선발 비화는 의외로 평범했다. MBC 뉴스데이트 앵커 선발 당시 회사 내부에서는 ‘앵커 얼굴이 너무 예쁘면 뉴스보다 얼굴에 시선이 쏠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적당히 편안한 인상’의 진행자를 찾다 보니, 박 전 장관이 낙점됐다. 큰 기대가 없었던 수뇌부들에게 보여줄 것은 실력 뿐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발탁된 심야 뉴스를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진행한 경력은 훗날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됐다. 아침 뉴스에 이어 아침 시간대 2시간 뉴스 ‘MBC 뉴스와이드’ 여성 메인 앵커 자리를 꿰찬 것이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마태오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조현호 기자 hyunho@)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마태오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조현호 기자 hyunho@)

◇모스크바·평양까지 생방송 연결...경찰 수사개시권 포문도

그의 두 번째 ‘퍼스트’는 국경을 넘어서 이뤄졌다. 1989년 한-소 수교 이전 모스크바 현지와 서울을 연결한 생방송, 2002년 서울–평양 위성 생방송 등 굵직한 현장을 연달아 ‘첫 시도’로 묶었다. LA 특파원 시절에는 한국인 최초로 할리우드 출입기자 자격을 얻어 스필버그·메릴 스트립 등과 인터뷰했다.

그는 당시 인터뷰 경험에 대해 “신인 스타는 경직돼 있었지만, 경륜 있는 배우는 유머로 분위기를 녹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경륜이 주는 여유, 그걸 배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 전 장관은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를 출입하면서 첨단 산업의 ‘현장성’도 몸소 체험했다. 이 때의 경험은 훗날 중기부 장관 시절 스타트업·반도체 정책의 밑바탕이 됐다.

정치 무대에서도 그가 끼운 ‘첫 단추’는 여럿이었다. “경찰은 검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문구가 박혀 있던 조항을 문제 삼아 협상 테이블에 올렸고, 이를 걷어내며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여는 틈을 만들었다. 박 전 장관은 “법조문을 달달 외운 사람이 아니었기에 더 낯선 시선으로 뜯어 볼 수 있었다”며 “관점을 다르게 봤더니 개혁의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국회 법사위 간사·위원장을 지내며 검찰개혁 공론장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박 전 장관은 BBK 의혹 제기 당시를 떠올리면서는 결코 쉽지 않았지만, 집으로 끈기 있게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BBK 취재 당시 검찰과 국정원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당시 미국 특파원 재직 당시 BBK 사건 관련 재판 기록을 자비로 입수해 명백한 유죄 증거를 확보해뒀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고, 당시 톨스토이의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를 매일 되새기고 살았다”고 회고했다.

◇‘여성다움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괴테의 명제 동감

박 전 장관은 여성 리더의 덕목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디렉션(지시)을 정확히 하고 본인의 말이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상상해 보는 것. 여기에 ‘마더 리더십’을 얹는다. 그는 먼저 “리더로서의 디렉션이 정확해야 된다는 걸 장관 재직 당시 깨달았다. 방향성을 정확하게 지시하는 부서가 퍼포먼스가 좋았는데, 디렉션을 정확히 주지 않으면 부하 직원들이 헤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이 리더로서 하는 말이 부하 직원들한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이 돼서 한번 생각해 보는 여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전 장관은 여기에 더해 “엄마의 마음, 휴머니즘이 여성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에게 따뜻함이라는 게 중요한 가치인 것 같다”면서 “괴테의 파우스트 마지막 구절에도 보면 ‘여성다움이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표현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다움이란 가치는 시대가 바뀜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여성다움이 당당함으로 보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푸근함으로 갈 수도 있는 건데 공통점은 엄마와 같은 푸근한 리더십”이라며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엄마와 같은 리더십으로 16년간 국가를 이끌었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또 유리천장을 깨부수기 위해선 현재 사회에서의 여성들이 ‘각개약진’에서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네트워킹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남성은 그룹을 만들고 백업하지만, 여성은 각자 뛰는 경향이 있다”며 “여성 네트워킹에 리더와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버드서 연구한 AI·반도체… “한국형 기술주권, 선택 아닌 생존”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마태오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조현호 기자 hyunho@)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마태오관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조현호 기자 hyunho@)

박 전 장관은 2023년부터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반도체 무기화와 세계 패권’을 주제로 연구했다. 그는 “챗GPT 이후 보고서 작성 시간이 3분의 1로 줄어드는 걸 체감하면서 AI가 ‘미래 사회로 가는 키’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4년 ‘반도체 주권국가’ ‘AI, 신들의 전쟁’을 내며 기술패권의 지도를 대중 언어로 번역했다. 2025년에는 3부작을 잇는 ‘AI 3대 강국’(가제)을 펴내며 한국의 AI 주권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책에서 그는 ‘한국형 생존전략’을 요약한다. △반도체 공급망의 전략적 참여(메모리 초격차+설계·파운드리 협업) △AI 인프라(연산·전력·데이터) 국가 프로젝트 △공공–민간–학계 간 ‘문제 정식화’ 연합 △규제 샌드박스와 책임 있는 오픈소스 생태계 △교육·인력의 수직적 재스킬링까지. “AI 시대는 더 여성의 시대”라는 그의 단언도 여기서 나온다. 그는 “기술이 늘릴 일자리는 ‘사람을 이해·위로·설득하는 역할’”이라면서 “AI는 여성의 커뮤니케이션·멀티태스킹 강점이 발현될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가정에서의 본인 점수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그는 집에서의 본인의 점수에 대해 50점이라고 평가하며 “흔히 직장을 갖고 있는 전문직 여성들이 제일 고민하는 게 아이를 출산할 이후일 것”이라며 “아들에게는 ‘엄마는 내가 필요할 때 없었다’는 서운함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 시기에는 아이에게 신경 써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달러가 움직이면 닭이 화내는 이유?…계란값이 알려준 진실 [에그리씽]
  • 정국ㆍ윈터, 열애설 정황 급속 확산 중⋯소속사는 '침묵'
  • ‘위례선 트램’ 개통 예정에 분양 시장 ‘들썩’...신규 철도 수혜지 어디?
  •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 62%…취임 6개월 차 역대 세 번째[한국갤럽]
  • 환율 급등에 증권사 외환거래 실적 ‘와르르’
  • 조세호·박나래·조진웅, 하룻밤 새 터진 의혹들
  • ‘불수능’서 만점 받은 왕정건 군 “요령 없이 매일 공부했어요”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7,169,000
    • -1.18%
    • 이더리움
    • 4,717,000
    • -0.63%
    • 비트코인 캐시
    • 853,500
    • -2.79%
    • 리플
    • 3,107
    • -4.46%
    • 솔라나
    • 206,400
    • -3.6%
    • 에이다
    • 654
    • -1.51%
    • 트론
    • 427
    • +2.4%
    • 스텔라루멘
    • 375
    • -1.83%
    • 비트코인에스브이
    • 30,860
    • -1.56%
    • 체인링크
    • 21,210
    • -1.3%
    • 샌드박스
    • 220
    • -3.5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