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로봇·클라우드 결합한 ‘피지컬 AI’ 본격 확산
산업별 디지털 전환 가속… 한국형 ‘AI 허브’ 윤곽 드러나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이 한국 산업의 새 전기를 열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주도한 ‘AI 동맹’에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전자, 네이버클라우드가 잇달아 합류하며, 한국이 세계 AI 제조·산업 혁신의 중심 무대로 떠올랐다.
이번 협력은 단순한 GPU(그래픽처리장치) 공급 계약을 넘어, 반도체·로봇·모빌리티·클라우드·통신을 잇는 ‘AI 팩토리 코리아’ 출범 선언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손잡고 업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AI 팩토리’를 구축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젠슨 황 CEO와 서울 코엑스에서 회동을 갖고, 향후 수년간 5만 개 이상의 엔비디아 GPU를 도입해 AI 반도체 개발 및 제조 혁신에 나서기로 했다.
AI 팩토리는 엔비디아의 디지털 시뮬레이션 플랫폼 ‘옴니버스(Omniverse)’를 기반으로 반도체 공정 전 과정을 가상 공간에 재현한다. 공정 데이터가 AI에 의해 실시간 학습·분석돼 회로 왜곡·불량을 사전 예측하고 설계 시간을 단축한다. 일부 공정에서는 이미 AI가 공정 편차를 자동 교정해 생산 속도를 20배 향상시켰다.
삼성은 이를 미국 테일러와 평택 등 해외 생산거점으로 확대하며, 엔비디아에 HBM3E·HBM4·GDDR7 등 차세대 메모리를 공급한다. 특히 HBM4는 10나노급 D램과 4나노 로직 공정을 결합해 초당 11Gbps 이상 속도를 구현한 제품으로, AI 반도체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SK그룹은 아시아 최초로 ‘제조 AI 클라우드’를 선보이며, 국내 제조업 전반의 AI 전환을 가속한다. SK하이닉스·SK텔레콤·SKC 등이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는 엔비디아 옴니버스 기반의 3차원(3D) 디지털트윈 공정을 구현하고, 정부·공공기관·스타트업에도 개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SK하이닉스는 최신 GPU(RTX PRO 6000 블랙웰 서버 에디션) 2000여 장을 투입해 이천·용인 클러스터에 AI 팩토리 인프라를 구축한다. SK텔레콤은 6세대(6G) 이동통신 기반의 ‘AI-RAN(지능형 무선접속망)’ 기술 실증을 주도한다. 이는 자율주행·로봇·산업제어 등 피지컬AI(Physical AI)의 핵심 전송망으로 평가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PEC 현장에서 “AI 클라우드를 제조업 전반에 개방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동등하게 AI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 분야의 AI 전환을 선언했다. 정의선 회장은 젠슨 황 CEO와 ‘깐부 회동’ 이후 경주 현장에서 3개의 AI 거점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양사는 약 30억 달러(4조 원)를 투자해 △AI 기술센터 △피지컬AI 애플리케이션센터 △AI 데이터센터를 국내에 구축한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의 블랙웰 GPU 5만 장을 투입해 자율주행·로보틱스·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개발을 위한 통합 AI 팩토리를 가동할 예정이다.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AGX 토르(Drive AGX Thor)’와 ‘옴니버스 엔터프라이즈’ 플랫폼을 활용해 차량과 공장의 디지털 트윈을 구현, 완전 자율형 공장으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정 회장은 “AI 팩토리는 단순한 기술 협력이 아니라, 한국이 글로벌 피지컬AI 허브로 도약하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와 네이버클라우드도 AI 팩토리 생태계의 또 다른 축으로 합류했다. LG전자는 엔비디아의 휴머노이드 추론모델 ‘아이작 GR00T’를 기반으로 로봇 학습과 디지털트윈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AI 냉각장치(CDU) 인증을 추진해 데이터센터 에너지 효율까지 아우르는 솔루션을 준비 중이다.
네이버클라우드는 ‘버티컬 AI(산업 특화 AI)’ 확산에 나섰다. 엔비디아와 공동으로 반도체·조선·에너지 등 국가 주력 산업에 피지컬AI 플랫폼을 적용하고, 초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산업별 학습 인프라를 통합 지원한다. 네이버가 제시한 ‘소버린AI 2.0’은 기술 주권을 산업 경쟁력으로 확장하는 전략이다.
이번 APEC CEO 서밋은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국 기업들이 ‘AI 산업화 연합’을 형성한 현장이었다. 반도체·데이터·모빌리티·로봇·플랫폼이 하나의 산업망으로 묶이며, AI가 제조와 기술의 공통 언어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GPU 확보 경쟁이 끝나면, 이제는 누가 더 잘 활용하느냐의 싸움이 된다”며 “AI 팩토리는 기술 협력의 산물이자, 산업 구조 전체를 AI로 재편하는 거대한 실험장”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