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산업 300조, 그 전략과 지역 기반 웹툰 생태계 활성화

입력 2025-11-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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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장

새정부는 ‘문화산업 300조 원 시대’를 내세웠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명확한 실행 설계가 있어야 도달 가능한 목표다. 이를 위한 핵심은 성장의 속도보다 질을 관리하는 정책 포트폴리오, 그리고 중앙과 지역을 연결하는 촘촘한 실행 거버넌스다. 그중 K‑컬처의 선봉인 웹툰 산업은 빠른 확장과 취약한 기반이 공존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플랫폼 중심의 외형 확대가 아니라, 창작과 데이터, 유통과 금융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생산성 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먼저 통계·표준·데이터 인프라가 산업정책의 시작점이어야 한다. 작품·회차·에피소드·파생 IP를 일관되게 식별하는 독자적 웹툰표준식별체계와 거래 표준을 확립하고, 플랫폼·제작사·에이전시가 준수할 데이터 제출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불법유통 모니터링 데이터, 장르·국가별 매출, 번역·현지화 효율 등 ‘정책에 쓰이는 데이터’를 상시 수집·공개하면 민간의 투자 판단도 정교해진다. 국가 차원의 웹툰 데이터 레이크와 공개형 대시보드는 필수 인프라다.

다음으로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계약·세제 환경을 갖춰야 한다. 표준계약서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수익정산의 주기·항목·검증의 과정을 체계화하고, 정산 지연·누락 시 이에 대한 현황 파악과 즉각적인 해결책을 위한 시스템 도입도 필요하다. 세제 측면에서는 시나리오·툴·파이프라인 개선에 쓰는 R&D 비용을 명확히 공제 대상으로 인정하고, 해외 현지화·법률검토·마케팅에 대한 ‘수출가속 공제’의 신설을 검토하며, 웹툰 산업의 중추인 중소 스튜디오가 라이선스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IP 유동화 가이드라인과 보증·보험을 정비해야 한다.

인력과 교육의 구조도 바꿔야 한다. 창작자 양성만으로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PD, 데이터 분석가, 로컬라이저, 브랜드·머천다이징 전문가 등 ‘보이지 않는 역할’에 대한 국가자격·민간공인 과정을 확대하고, 현장 프로젝트 기반의 장기 레지던시로 전환해야 한다. 대학‑지자체‑플랫폼이 공동 운영하는 프로덕션 랩에서 파일럿 연재-데이터 분석-OSMU 시제품까지 한 사이클을 돌려보는 학습‑사업 연계 모델이 요구되는 이유다.

현재 가장 필수적이고 시급한 해외사업은 ‘한 방의 대작’이 아니라 포트폴리오와 반복 가능한 운영 체계로 승부해야 한다. 번역·문화감수·현지 마케팅을 바우처와 매칭펀드로 묶고, 중소팀이 쓸 수 있는 글로벌 공급망(현지 에이전시·법률·세무)을 공공이 공동구매 형태로 제공하면 단위 프로젝트의 리스크가 낮아진다. 동시에 수출보험의 적용 범위를 플랫폼 계약 해지·검열 리스크까지 확장하여 창작자의 하방을 보호해야 한다.

기술 변화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와 책임 원칙도 병행해야 할 이슈다. AI 생성·보조 도구의 사용은 투명하게 표시하고, 권리자 사전 동의·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대신, 합법 데이터로 학습한 도구의 산업 활용은 신속히 허용하는 ‘선명한 규칙’을 제정해야 한다. 불법 스캔·크롤링에 대해서는 플랫폼‑정부 합동 단속과 신속 차단 판정 절차를 상시화해야 한다.

지역 전략은 ‘행사 중심’에서 ‘생산 체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각 도시는 지역의 산업 구조와 대학, 생활문화 인프라에 맞춘 차별적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한 도시가 모든 것을 하려 들면 모두가 약해진다. 예컨대 대학·연구 기반이 탄탄한 도시는 스토리 R&D와 툴 파이프라인 표준화에, 관광·로컬 브랜드가 강한 도시는 로컬 IP 개발과 체험형 전시에, 스타트업 환경이 좋은 곳은 크리에이터‑테크 융합에 집중하는 식이다.

지역 실행의 핵심은 다섯 가지다. 첫째, ‘지역 웹툰 허브(창작 스테이션)’를 상시 운영해 레지던시, 장비, 로컬라이저 풀을 제공한다. 둘째, 대학‑센터‑플랫폼 컨소시엄으로 학기제 제작 실습을 운영하고, 지역 방송·게임사와 공동으로 OSMU 파일럿을 만든다. 셋째, 정기 로컬 테스트베드를 열어 신규 연재를 소규모 유료 A/B 테스트로 검증하고, 성과가 나면 중앙 펀드와 매칭해 스케일업한다. 넷째, 지역 축제는 글로벌 비즈니스 미팅과 묶어 실제 계약과 투자가 일어나게 설계한다. 다섯째, 아카이브와 저작권 상담, 분쟁 조정 창구를 원스톱으로 묶어 창작자의 ‘시간 비용’을 낮춘다.

이런 과정에는 주의해야 할 함정도 분명하다. 하청형 분업이 고착되면 지역은 저부가가치에 갇힌다. 단기 보조금 의존은 창작자의 생태적 자립을 해치고, 전시성 행사는 민간 신뢰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모든 사업에는 ‘성과‑기반 보조’ 원칙을 도입하고, KPI를 매출·고용·수출·저작권 분쟁 감소·현지화 효율 등 실질 지표로 구성하되, 외형 목표만이 아니라 3년 이동평균과 중간평가‑피드백을 의무화해 과도한 목표 압박을 방지해야 한다.

결국 300조 원 목표는 중앙의 대담한 규칙과 지역의 정교한 생산 체계가 맞물릴 때 현실이 된다. 데이터에 근거한 정책, 예측 가능한 계약과 금융, 보이지 않는 역할을 키우는 교육, 반복 가능한 해외 운영 모델, 그리고 지역별 특화 전략이 함께 돌아갈 때 K‑컬처의 성장 곡선은 일시적 파동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추세’로 바뀐다. 웹툰은 그 변화의 선봉에서, 문화강국의 실력을 증명하는 가장 명징한 산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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