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은은 4월 통화정책방향부터 밝혔던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 시기 및 속도 등을 결정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를 이번에도 유지했다.
이번엔 틀렸지만 올 들어 그의 인하 소수의견은 바로 다음번 금통위 인하라는 공식을 만들었던 신성환 금통위원의 인하 주장도 직전 금통위에 이어 이번에도 나왔다. 3개월 내 기준금리 동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한국판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선제적 안내)에선 4명의 금통위원이 인하 가능성을 열어놨다.
시장 기대를 기준으로 보면 5월 금리인하 이후 한은이 인하할 듯하다 결국 동결로 결론난 게 벌써 두 번째다. 이창용 한은 총재의 ‘라코’(RACO: Rhee Always Chickens Out)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행보에 부정적 분위기가 없지 않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많다고 본다. 또, 두 가지 이유에서 응원을 보낸다.
우선, 부동산값 급등과 이에 따른 가계부채 급증에 대한 원인 제공자를 따지자면 한은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멀게는 김대중 정부부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한은은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해왔다. 특히 ‘빚 내서 집 사라’ 했던 박근혜 정부 시절엔 기획재정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오명을 다시 들을 정도로 기준금리 결정에 한은 독립성이 훼손됐었다.
금리인하는 결국 돈을 푸는 정책이다. 돈이 얼마만큼 시중에 풀렸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광의통화(M2) 흐름을 되짚어보면 금리인하기와 M2 증가율 시기가 겹친다. 또, M2 증가는 집값 상승률과 맥을 같이해 왔다.
이번 금통위 금리 동결 이유는 무엇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집값 상승이다. 금통위 기자회견을 보면 이 총재가 ‘부동산’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횟수가 34번에 달했다. 이 총재는 금통위에서 “100bp(1bp=0.01%포인트) 금리를 인하하면 성장률을 0.24%포인트 정도 높이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생각한 것만큼 경기부양 효과보다는 자산가격을 올리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간 통화정책에 대한 자기반성이 묻어나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또, 그간 시장금리를 추수(追隨·뒤쫓아 따름)해 왔던 관행을 깰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즉, 한은이 시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이뤘다 할 수 있겠다.
이는 이번 금통위에 대한 채권시장 반응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연내 추가 금리인하는 물 건너갔다는 반응이 나왔고, 비록 일각이긴 하나 이 총재에 대한 원망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만큼이나 컸다. 이 같은 분위기는 실제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금리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국고채 3년물 금리가 벌써 2.7%를 목전에 두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문제는 양극화를 부추기고 저출산·고령화를 초래해 경제성장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한은도 더 이상 금리인하로 경제를 부양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릴 때다. 이번 동결이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그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