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한복판, 오픈 직후부터 매일 긴 줄이 이어지는 곳이 있다. 피팅룸 앞엔 젊은 여성들이 빽빽이 서 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젠지들의 교복’이라 불리는 사진이 넘친다. 올해 한국에 상륙한 글로벌 브랜드 ‘브랜디멜빌(Brandy Melville)’ 이야기다.
이 브랜드명에는 의외로 ‘사랑 이야기’가 숨어 있다. 브랜디멜빌은 이탈리아 사업가 실비오 마사니가 만든 가상의 커플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미국 소녀 브랜디(Brandy)와 영국 청년 멜빌(Melville)이 로마에서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이 두 인물의 이름을 합쳐 만든 ‘브랜디멜빌’은 단순한 상표명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 클래식과 자유로움’이 만나는 청춘 로맨스의 상징이었다.
이 낭만적인 서사는 브랜드의 이미지 전략이 되었다. 흰 셔츠, 미니 스커트, 파스텔 톤의 니트 제품들은 ‘첫사랑 같은 감성’을 입히며 10·20대 여성에게 로망이 됐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가득 메운 캘리포니아 햇살과 로마 거리의 이미지 속에서 소비자들은 자신이 그 세계관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꿨다. 이 세계관 덕분에 브랜디멜빌은 2023년 기준 약 2억1250만 달러(약 3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 세계 젊은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브랜디멜빌은 XS~S 단일 사이즈만을 판매하는 정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브랜디멜빌 옷이 맞느냐가 10대 사이 인기 척도로 통할 만큼, 마른 체형만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내 첫 매장 오픈 이후에도 “디자인은 예쁘지만 사이즈가 작다”는 소비자 불만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이즈 문제는 논란 일부에 불과하다. HBO 다큐멘터리 ‘Brandy Hellville & the Cult of Fast Fashion’은 이 브랜드의 내부 운영 실태를 다뤘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직원들은 매일 전신사진을 대표에게 전송해야 했으며 외모 기준에 맞지 않으면 해고 통보를 받았다. 백인 직원은 매장 전면, 유색인종 직원은 창고나 계산대 뒤로 배치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한 브랜디멜빌의 최고경영자 스테판 마르산(Stephan Marsan)이 거리에서 직접 여성을 선발해 사진을 찍고 채용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큐멘터리에는 값싼 인력에 의존한 생산 체계와 버려진 의류가 가나 해변에 쌓여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브랜디멜빌이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로서 환경과 노동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감독 에바 오너(Eva Orner) 는 “우리가 SNS에 올린 한 장의 OOTD(오늘의 착장)가 누군가의 해변을 오염시킨다”고 말했다.
브랜디멜빌은 여전히 전 세계 젊은 세대에게 ‘감성의 아이콘’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체형·인종 차별과 노동·환경 문제 등 불편한 진실이 공존한다.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로 시작한 브랜드가 현실에서는 불평등과 착취의 상징으로 비판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