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업들 ‘플랜 B’ 모색⋯비싼 비용ㆍ소규모 발급 등 단점

미국 이민 당국의 한국인 대규모 구금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기업들의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공장 건설과 장비 점검 등 단기 출장을 재개하면서도 기존의 단기출장비자(B1) 대신 더 안전한 비자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한미 양국이 B1과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한 출장 활동이 가능하다고 확인했지만, 현장에선 ‘혹시 모를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비자 플랜B’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주요 대기업들은 최근 B1 비자를 통해 미국 출장을 속속 재개했다. 이는 지난달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서 B1 비자와 ESTA 소지자도 장비 설치·점검·보수 등 현장 업무가 가능하다는 점이 공식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ESTA는 가급적 자제하자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하지만 기업 내부의 긴장은 여전하다.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구금된 이후, 미국 비자 전문 로펌에 기업 법무팀과 인사팀의 관련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로펌은 기업들의 비자 문의가 급증하자 한국 지사 근무시간을 연장하며 상담에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의 관심이 특히 몰리는 비자는 ‘주재원 비자’로 불리는 L1이다. 주재원은 미국 법인에서 급여를 받는 반면, 단기 파견자는 한국 본사에서 급여를 받기 때문에 공장 건설 목적의 출장에는 L1이 본래 취지와는 다소 다르다. 그럼에도 L1 문의가 늘어난 것은 앞으로 단기 파견보다는 안정적인 체류 인력을 두려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ESTA는 최대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직원들을 3개월 단위로 연달아 출장을 내보내는 방식으로 많이 활용됐다. 발급 절차가 간단하고 비용이 저렴해 많이 쓰였지만, 구금 사태 이후에는 한 명의 인력에 안정적인 L1 비자를 부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L1 비자는 개별 신청(Individual)과 기업 단위 신청(Blanket)으로 나뉜다. 이 중 Blanket L1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사전 승인을 받아두면 필요할 때마다 별도 심사 없이 인력을 파견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발급 기간이 2주 안팎으로 짧고 절차가 간소화돼, 신속한 인력 교체가 필요한 대기업들이 주로 찾고 있다.
단, B1보다 3배 이상 비싼 비용은 단점으로 꼽힌다. 한 기업 관계자는 “L1 비자 비용이 너무 비싸서 대규모로 현지 출장 인력을 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L1 외에 E2(투자자 비자) 또는 O1(특기자 비자)에 대한 비자 관련 문의도 적지 않다고 한다. E2는 미국에 자본을 투자한 기업의 직원들에 발급되는 비자다. O1 비자는 신청 요건으로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외국인에게 부여된다’고 정하고 있다.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춘 직원들이 발급받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B1만으로 현장 활동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양국 간 해석 차이로 인한 위험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기업들은 단순 출장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법률 자문을 강화하는 중이다.
이민법 전문인 이경희 법무법인 에스엔 미국 변호사는 “보수나 점검 업무는 B1이나 ESTA로도 가능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노동의 성격이 짙어지면 단순 출장의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기업들이 L1 등 다른 형태의 비자를 병행 검토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