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3억 달러 순유출⋯3년 반만 최대
정치적 리스크⋯외인 투자比 8개월째↓

아시아 주요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3년 반 만에 최대 폭으로 빠져나갔다. 이 지역의 경기둔화 우려 심화, 특정 국가의 재정 악재와 정치적 불확실성 등이 겹친 결과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와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9월 아시아 채권 시장에서 상당한 규모의 외국인 자금 순유출이 발생했다. 이는 3년 6개월 만에 최대 폭출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ㆍ태국, 필리핀, 한국 등에서 총 93억 달러를 순유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절반 이상은 인도네시아 채권이었다.
로이터는 ANZ 아시아리서치 보고서를 바탕으로 “아시아 주요국 내수 부진이 지속하는 가운데 중기적으로 이 지역 자산 지지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역시 “코로나 이후 지속하던 순유입세가 완전히 반전됐다”고 진단했다.
로이터는 채권 시장서 외국계 자금이 이탈한 배경으로 △미국 고금리의 장기화 △달러 강세 △아시아지역 주요 신흥국 정치 불안 심화 등을 꼽았다. 각각의 요인보다, 위 3가지 불확실성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채권 이탈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이번 아시아 채권시장 자금 이탈은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했다. 루피아 가치가 연중 최저로 떨어진 가운데 내년 총선을 앞둔 재정 확대 논란이 불거지면서 외국인들은 인도네시아 국채를 연이어 매도하며 이 시장을 등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0년물 금리는 이미 7%를 넘어섰고, 외국인 보유 비중은 15% 미만으로 떨어졌다. 7% 수준의 금리에도 채권이 팔리지 않는 만큼, 향후 채권 금리가 더 오를 여지도 남아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외국인 투자 비중이 8개월째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가 더디게 이어지는 한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인플레이션 둔화에도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아시아 채권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미국 기준금리가 더디게 인하되면서 아시아 신흥국 채권의 금리 메리트가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나아가 달러 강세가 지속 중이라는 점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달러 자산 회귀’의 배경으로 꼽혔다.
실제로 올해 하반기 아시아 주요국 경제 성장세는 둔화세에 접어들었다. 올해 초부터 잇따라 쏟아진 중국의 경기 부양책은 실효성에 의문이 이어지면서 내수 회복을 끌어내지 못했다. 대만의 반도체 수출은 단기호재 의존도가 높았고, 한국의 반도체 수출도 회복이 더디게 이어지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국가의 정치적 변곡점도 불확실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정권 교체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말레이시아 재정적자 논란 등이 외국인 투자금 이탈심리를 자극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채권시장 역시 외국인 매도세가 뚜렷했다. 지난달에만 1조2000억 원에 달하는 순유출을 드러내며 4개월 연속 순매도세를 이어갔다. 매도세는 국고채 3년과 5년물 중심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자금 흐름은 아시아 신흥국 채권 시장이 높은 변동성에 노출되어 있으며, 달러 강세와 맞물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매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일본 총리로 확정되면서 ‘제2의 아베노믹스’ 가능성도 부상했다. 다만 이런 분위기가 당장 한국 채권시장에 미칠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발 정책 변화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한데다, 국내 시장이 부동산 리스크에 집중하면서 대외 변수에 둔감해져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초 발간한 ‘아시아태평양경제전망(Regional Economic Outlook for Asia and Pacific)’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의 채권 매력은 금리보다 제도적 신뢰의 문제로 이동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주요 채권 전문기관들이 이번 현상을 ‘단기적 자금 이탈’로 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아시아 채권시장이 이제 구조적 변곡점에 들어섰다는 것. 싱가포르의 UOB 자산운용은 보고서를 통해 “신흥국의 투자 매력은 금리 스프레드가 아니라 통화 안정성과 재정 투명성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비즈니스타임스는 피닉스 칼렌(Phoenix Kalen) 소시에테제네랄 전략가의 분석을 바탕으로 “투자가치의 약화 탓에 아시아 주요국에 투자 매력 하락세가 이어졌다”라며 “신흥시장 성과의 역풍 가운데 하나”라고 보도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채권 애널리스트는 “일본이 완화정책을 끌고 가는 것은 금융시장 자체로는 나쁘지 않겠다. 하지만 외환시장쪽에서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한국경제에 부담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국내 채권시장에는 약간 중립적 재료일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