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년간 '일본산 가마우지 구조' 극복에 힘써온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이 생존을 위협받는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소부장 공습'에 맞서 이제는 ‘생존’을 위한 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9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산업연구원은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소부장과 공급망: '진짜성장'과 경제안보 강화를 위한 정책 방향'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소부장 산업이 미국과 중국발(發) 충격에 동시에 노출됐다.
우선 미국의 관세·산업정책 조합은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를 가속화해 국내 소부장 생태계의 양적·질적 공백을 초래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같은 정책으로 인해 국내 대기업들이 미국 현지 생산을 대폭 늘리자, 이들과 협력해온 소부장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핵심 생산기지와 연구개발(R&D) 역량을 미국으로 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기반의 공동화(空洞化)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중국의 첨단제조 굴기는 우리 소부장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소부장 수입 의존도는 2012년 23%에서 2024년 29.5%까지 치솟았다. 보고서는 기술력까지 갖춘 중국산 소부장이 우리 제조 생태계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공급이 과잉돼도 문제고 중단돼도 문제가 되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소부장 정책은 2001년 특별조치법 제정 이후 일본 수출규제, 요소수 대란 등을 거치며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일본 추격’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제조업 생태계 자체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이에 보고서는 ‘생존’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정책 설계를 주문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발 충격에 대응해 유동성 공급과 북미 진출 정책 패키지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공세에 맞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전략 소부장’을 확보하고, 단순 협력을 넘어선 ‘전략적 산업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코-현대제철, 현대차-GM 간 동맹이 그 예시다.
이준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제 소부장·공급망을 기술 정책을 넘어 투자, 규제, 인재 등을 아우르는 국가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