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를 대상으로 최대 100% 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투자 전략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 표면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투자 압박이지만 산업계에서는 현지 투자가 사실상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새로운 ‘입장료’로 바뀌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1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투자 압박 수위를 예의주시하며 우리 정부와 미국 간 협상 흐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며 투자 규모를 370억 달러(약 54조5100억 원) 수준으로 확대했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38억 달러(약 5조6000억 원)를 투입해 첨단 패키징 거점을 구축하기로 했다. 그동안 반도체 기업의 투자는 미국 보조금 확보와 고객 대응 차원으로 해석돼 왔지만 최근에는 관세 면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이른바 ‘무관세 티켓’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다만 투자 규모를 놓고 보면 대만 TSMC와는 차이가 크다. TSMC와 대만 정부는 미국에 각각 2500억 달러(약 368조3500억 원) 등 총 5000억 달러(약 736조7000억 원) 투자를 예고했다. 이에 맞춰 미국은 대만 기업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동안 생산능력의 2.5배까지 관세를 면제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우대 관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공장 완공 이후에도 생산능력의 1.5배까지 관세를 면제하는 조건이다. TSMC는 이미 애리조나주 피닉스 파운드리 공장에 약 1650억 달러(약 243조1100억 원)를 투자한 데 이어 추가 투자를 예고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시장에서 관세 0% 지위를 확실히 굳히기 위해서는 추가로 수십조 원대 투자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이 ‘추가 청구서’가 국내 투자와 충돌할 가능성이다. 평택과 용인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증설 계획은 대규모 자본 투입을 전제로 한다. 삼성전자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 36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라인 6개를 조성할 계획이며 SK하이닉스도 60조 원 규모의 용인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중장기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청주에 19조 원 규모의 첨단 패키징 시설(P&T7) 건설도 결정했다.
미국 투자를 늘릴수록 국내 설비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축이 해외로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갑작스러운 생산시설 확대로 공급이 수요를 웃도는 공급과잉이 벌어져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고 개별 반도체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카드가 본격화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투자 확대와 국내·중국 생산 거점 재조정이라는 복합적인 선택을 동시에 요구받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회피를 위한 미국 투자가 단기 해법이 될 수는 있지만 그 비용과 대가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중장기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