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슬비가 흩날리던 26일 오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안가에는 수십 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날개를 돌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탄소 없는 섬'을 향한 제주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한 풍경 너머, 해안에서 1.2k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묵묵히 서 있는 어두운색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구조물은 바로 대한민국이 최초로 시도하는 '해양 그린수소' 생산의 심장부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가 주관하고 한국중부발전, 제주도청 등 12개 기관이 참여해 '해양에너지 연계 그린수소 생산 기술개발' 과제를 수행하는 실증 시설인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임창혁 KRISO 책임연구원은 이곳을 "바다의 무한한 에너지로 미래 청정에너지인 수소를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소개했다.
가장 큰 의문은 '왜 복잡하게 바다에서 수소를 생산하는가'다. 육상에서 전기를 끌어다 만들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라는 물음표가 생겨서다.
이에 대해 임 책임연구원은 명쾌하게 설명했다. 우선 대규모 생산 잠재력 때문이다.
그는 “육상보다 해상풍력 등 바다의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이 훨씬 크기 때문에 대규모 수소 생산이 가능하다. 또한 육상에 대규모 수소 생산 시설을 짓는 것은 주민 수용성 및 부지 확보 문제로 매우 어렵지만, 바다는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롭다”며 “마지막으로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해 폭발 등 유사시 안전거리를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의 해양 그린수소의 실증 방식도 상세히 소개했다.
임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파력,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현장 구조물은 파도가 칠 때 공기를 압축해 터빈을 돌리는 '진동수주형' 파력발전소 역할을 겸한다.
다음은 해수 담수화 및 수전해 부분이다. 육상과 달리 바로 쓸 물이 없어 바닷물을 끌어올려 염분을 제거하는 담수화 과정을 거쳐 순도 높은 물을 만들고, 이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최종 생산한다.
임 연구원은 "육지에서는 물을 쉽게 구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서는 해수를 담수화하는 과정이 하나 더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상업 생산이 아닌 기술 실증 단계다. 계절풍의 영향으로 파력발전은 주로 겨울철에 활발하며 현재는 계통 전력으로 풍력발전 상황을 모사해 수소를 생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생산된 수소는 현재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산된 수소를 저장하고, 연료전지를 통해 다시 전기로 활용하는 설비를 구축하기 위해 정부에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한 상태다.
연구팀은 2040년까지 해양수소 생산 단가를 kg당 3000원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당장의 해양 그린수소 경제성보다 에너지 안보와 미래 기술 선점이라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임 책임연구원의 말처럼 "바다에서 수소를 처음으로 만들어보자"는 담대한 도전이 제주의 거센 바람 속에서 영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