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소환 자제 분위기지만⋯증인 채택 볼모로 지역구 민원 해결
통상환경ㆍ관세정책 불확실에도⋯최근 야당 정부견제 수위높여

국감 시즌이 돌아오면서 또다시 기업인 줄소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5대 그룹 총수급은 최종 명단에서 빠졌지만, 여전히 주요 기업 대표와 임원들이 줄줄이 불려 나오는 상황이다. 국회가 정책 검증이라는 본래 취지를 벗어나 기업을 ‘손쉬운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재계에서는 “매년 가을만 되면 여의도에서 무릎을 꿇느라 정신이 없다”는 탄식이 나온다. 올해 역시 증인 채택을 볼모로 의원실 민원과 지역구 지원 요구가 뒤섞이며 기업들의 피로감은 가중되고 있다.
28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국회 각 상임위원회는 국정감사 실시계획서를 의결하고 증인·참고인 명단을 확정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발생한 대규모 해킹사태를 이유로 김영섭 KT 대표와 임원진을 증인으로 채택했고, 롯데카드 해킹 사건과 관련해서는 대주주인 김병주 MBK 회장과 김광일 MBK 대표이사도 불러 세운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는 박대준 쿠팡 이사, 정용진 신세계 회장, 조만호 무신사 대표, 김기호 아성다이소 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국토교통위원회 역시 굵직한 건설사 대표들을 대거 소환하기로 했다.
LG·SK 등 주요 그룹 총수급 인사들은 최종적으로 명단에서 빠졌지만, 증인 신청 단계에서는 각 상임위별로 실제 이름이 오르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대관 조직은 이들을 명단에서 제외하기 위해 의원실을 찾아다니며 치열한 물밑 조율에 나서야 한다.
지난해에 비하면 마구잡이식 기업인 소환은 자제되는 분위기다. 정부·여당 내부에서도 최근 불확실한 통상환경과 관세정책,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직원 구금 사태 등으로 기업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한 만큼, 불필요한 소환은 자제하자는 기류가 강하다. 조만간 열릴 경주 APEC 회의에서 기업 지원이 필수적인 상황도 고려됐다.
야당은 다른 태도다. 기업인들은 야당이 그 어느 때보다 총수들을 공격적으로 불러내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위치가 바뀐 국민의힘이 정부 견제 장치로서 ‘기업인 소환 카드’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업의 명백한 위법 행위나 사회적 물의보다는 ‘다른 목적’을 위한 소환이라는 지적이 많다는 점이다. 한 기업인은 “계열사 문제가 있다면 해당 계열사 대표를 증인으로 세우면 되는데, 총수를 부르자는 것은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야당이 정부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기업을 불러 세우고 ‘정부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말해보라’는 식으로 추궁하려는 것”이라며 “여당 의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참 곤란하다”고 꼬집었다.
정책 검증 대신 민원 해결 창구로 국감을 활용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앞서의 기업인은 “몇몇 의원실에서 총수 소환을 신청했고 이를 빼기 위해 찾아갔더니, 이들 모두 지역구 지원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다”고 말했다. 기업을 압박해 지역 민원을 풀어내는 통로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다른 대기업 대관 직원은 “야당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해야 하는데,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뚜렷한 아이템을 찾지 못하고 계속 기업만 불러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정부조직 개편이라는 큰 이슈로 국감 준비가 다소 늦어지면서, 애먼 기업인들만 불러 세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