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친화 전환·임금개편 필요...美日처럼 국가차원 연구소 필요
“고령자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지면서 노동 인구의 총량 자체는 우려만큼 빨리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청년 노동 인구가 25년 내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겁니다.”
서울대 국제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을 맡고 있는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본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가장 큰 변화로 청년 노동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꼽았다. 그는 “젊은 노동 인구는 최신 교육을 받고 습득력과 적응력도 빨라 노동시장의 기능을 가장 잘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이런 ‘젊은 피’가 줄면 노동시장의 활력이 떨어지고 잠재성장률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국내 대표적인 인구경제학자인 이 교수는 지난해 저서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를 통해 인구 감소가 노동시장에 미칠 충격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교수는 단순한 인구 총량 감소보다 부문별 인력 불균형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는 일할 사람이 크게 부족해지고 어떤 분야는 인력 과잉이 생길 수 있다”며 “이런 인력의 미스매치 문제가 한국 경제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년 연장만으로는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정년 연장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만 효과가 있을 뿐 실제 인력이 부족한 돌봄·운송·외식업 분야에 고용을 늘리는 효과는 내기는 어렵다”며 “고령층 노동을 단순히 늘리기보다는 고령 친화적 직무 전환과 임금체계 개편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 정책의 한계도 짚었다. 이 교수는 “저출산은 우리 사회에 문제를 만들어내는 근원이 아니라 여러 구조적 문제의 결과이자 증상”이라며 “좋은 일자리가 줄고 불평등과 수도권 주거비 부담, 교육 경쟁이 심화되면서 결혼 자체가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단순히 출산율이라는 수치 목표보다는 국민이 원하는 선택을 가로막는 구조적 제약을 완화하는 방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교수는 “현재 정책은 이미 결혼한 중상위층 가구에 초점을 맞췄지만, 결혼을 원해도 여건상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문제”라며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 자체가 정책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역 불균형 문제와 관련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지역을 다 살리겠다는 건 사실 어느 지역도 안 살리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며 “청년이 머물 수 있는 성장 거점 지역을 지정해서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30분만 차를 타고 가면 모든 교육·문화·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허브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나아가 인구 문제 대응을 위한 인구 전담 부처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인구 문제가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통합해서 잘 조율하고 일관되게 인구 정책을 실행해 나갈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며 “인구 전담 부처를 조직해서 관련 정책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인구 정책 추진을 위한 연구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구 정책 시행을 위해서는 데이터를 축적하는 게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연구 기반이 굉장히 부족한 상황”이라며 “미국·프랑스·일본처럼 모두 국가 차원의 연구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인구 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어디에 목표를 두고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며 “이를 국민과 충분히 공유하고 설득해 나가지 않으면 구조적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기 어렵다”고 짚었다.
끝으로 그는 인구 위기를 개혁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과거에도 전쟁이나 경제 불황처럼 외부 충격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복지국가를 만들어 냈다”며 “인구 감소 역시 유연 근무 확대, 평생교육 강화, 일·가정 양립 제도 등 추진이 어렵던 과제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