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본검사로 잡았어야" vs "절차 모두 준수"

제주 한 골프장에서 회계 담당 직원이 수년간 60억 원 가까운 회삿돈을 빼돌렸는데도 외부감사에서 두 해 연속 '적정의견'이 내려진 사실이 드러나 감사 책임과 제도 허점을 둘러싼 공방이 일고 있다.
2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제주 애월읍의 A 골프장 운영법인은 최근 B 회계법인과 소속 공인회계사 양모 씨를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제주서부경찰서에 고소했다.
A 골프장 측은 2022~2023 회계연도 외부감사를 맡은 양 회계사가 "내부 통제에 심각한 결함을 인지하고도 이를 감사보고서에 반영하지 않고 허위로 적정 의견을 냈다"며, 거액 횡령을 적발하지 못한 책임을 묻고 있다.
고소장에 따르면 당시 경리부장이자 단독 회계 담당자였던 현모 씨는 2022년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66차례에 걸쳐 55억 3200만 원가량을 개인 계좌로 이체했다. 그는 세금 납부나 전력 요금 결제 등을 가장해 결제 내역에 제주세무서·한국전력공사 등의 기관명을 적고 상급자에게 송금 승인을 받은 뒤, OTP(일회용 비밀번호) 인증을 이용해 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A 골프장 측은 현 씨가 국세·지방세 환급금 약 16억 원을 회사가 평소 사용하지 않던 계좌로 돌려받은 뒤 이 자금을 사적 유용하면서 회원 환급 등으로 전표를 꾸며 자금 유출을 은폐한 것으로 파악했다. 현 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됐다.
문제는 이런 대규모 자금 유출에도 2022년과 2023년 두 해 모두 외부감사에서 '적정의견'이 내려졌다는 점이다. A 골프장 측은 감사 기준상 단일 담당자가 회사 자금을 전담하면 내부회계관리제도에 중대한 결함이 의심되므로 감사 범위를 넓혀야 했다고 주장한다. 실제 A 골프장 2023년 계좌에는 1억 원 이상 출금 44건, 5억 원 이상 6건이 있었는데 이런 고액 거래는 표본검사에서 사실상 전수조사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A 골프장 측은 "정상적인 감사를 했다면 회계 자료 검증 과정에서 현 씨의 횡령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재무제표에 중대한 부정이나 오류를 시사하는 여러 징후가 있었고, 적어도 그 허위 가능성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반면 양 회계사는 감사 기준에 따라 정상적으로 절차를 수행했다는 입장이다. 양 회계사는 "감사 목적은 재무제표가 적정하게 작성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지 범죄를 적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계정 과목은 여러 차례 지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모든 감사 절차를 적정하게 수행했으며 발견되지 않은 것은 내부 직원의 조작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회사 자금을 단독 관리하는 구조와 외부감사 제도의 한계가 맞물리며 사건이 장기간 드러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한 사람이 돈을 만지고 기록까지 하면 횡령 위험이 크다"며 "외부감사인은 내부회계관리제도를 검토하고 위험 신호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상 징후를 포착해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규모 법인은 전산화된 회계 시스템을 도입해 거래·승인 과정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장부 기장 등을 외부 회계사무소에 위탁해 이중 견제 장치를 두는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다"며 "감사인 역시 회계감사기준서에 따른 절차를 충실히 이행했는지 점검을 강화하고, 감사계약서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상적 절차를 거쳤는데도 발견이 어려운 경우는 면책될 수 있지만, 표본검사·위험평가를 소홀히 했다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