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홍준형 칼럼] 법치 근간 흔드는 소탐대실 멈춰야

입력 2025-09-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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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공법학

선출 권력 운운…사법부 독립 핍박
사법개혁 명분 집권구도 강화일 뿐
이성 잃은 정치는 사상누각 불과해

어느덧 가을 시원한 바람이 부는데 법비(法匪)들의 칼춤은 끊임이 없다. 검사를 27년이나 했다는 대통령이 헌법의 비상계엄 조항을 발동하는 황당한 사변이 벌어졌고, 야단법석 후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혁명정부가 반동분자 토벌하듯 3특검법, 법원조직법개정법, 내란특별재판부설치특별법을 밀어붙인다. 허무맹랑 불꽃놀이로 끝난 정권, 법비들의 망동을 딛고 꿈을 이룬 대통령은 급기야 ‘임명 권력보다 선출 권력이 우선한다’고 주장하고 나선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임명 권력은 선출 권력으로부터 2차적으로 권한을 다시 나눠 받은 것이므로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최고권력은 국민, 국민주권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라며 서열까지 매긴 이 말은 여느 평론가가 아니라 일국의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 대통령은 심지어 내란특별재판부 추진과 관련하여 “그게 무슨 위헌이냐” 반문하며 “사법부 독립은 사법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주권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변한다.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으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은 ‘헌법을 한번 읽어보시라’고 일갈했다.

사법부도 의회의 견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헌법이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현실적으로 행정부나 의회가 자칫 사법의 독립을 위협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미리 단속한 것이다. 헌법기관도 민주적 정당성이 다르다며 헌법을 ‘제대로’ 읽어보라는 반박도 나왔지만, 그렇다고 헌법이 엄명한 사법권의 독립을 국민주권과 선출권력의 서열론으로 위축시키는 게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법을 내세우고 헌법을 들먹이지만 ‘사법개혁’이란 그럴듯한 외피를 씌운다고 그 저의가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강수를 두며 정권이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대법원이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를 믿지만, 총구가 우리를 향해 난사하면 고쳐야 한다”고 말한 것을 상기한다. 집권세력의 마스터플랜이 나온 출처를 엿볼 수 있는 단서다. 물론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정권과 여론, 앞장서 총대를 메고 칼을 휘두른 검찰에 적개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복수심은 또 왜 없겠는가.

하지만 정치적 의도와 구도가 더 중요하다. 이 모든 기동이 내년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 그리고 대선 등 연쇄 선거의 승리를 통한 집권구도의 공고화·지속화를 향해 간다. 내란사건 재판부의 ‘침대축구’를 비난하지만 벌써 시작된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쥐려면 푸닥거리를 이어 나가야 한다. 상황은 종료되어도 내란 종식은 유예한다. 노림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장 퇴진을 압박하며 사법부에 총공세를 가한다. 오늘의 이 모든 영광과 기회를 수확한 총선에서 다시 꿀맛 승리를 기대하며 전방위로 인물을 교체하고 산하 지형을 바꾼다. 통합이나 협치는 자리가 없다. 고지전, 오로지 목표 달성만이 중요하다.

그러나 들녘을 벌겋게 물들이듯 감행되는 이 모든 수순, 국민주권을 표방한 정권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교훈은 엄연히 살아 있다. 장기집권플랜 역시 헌법민주주의와 법치를 떠나서는 십 리도 못 가 발병이 난다.

역대 어느 정권도 ‘잘 드는 칼’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사실 검찰문제의 9할은 역대 정권이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그 칼이 정권마저 휘어잡을 기회를 준 게 누구였나. 길들여지지 않는 권력을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몇 마디 말에 감복하여 길들이려 시도하다 정권까지 넘겨준 희대의 슬랩스틱(slapstick)은 누구 탓인가.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꾼들 그 칼이 사라질까. 그 칼이 다음엔 칼자루만 바꿔 어디, 누구에게 가서 누구를 위해 춤을 출지 생각해 보았는가.

정권을 잡은 사람들에게 고한다. 지난 80년 천신만고를 겪으며 쌓아 올린 헌법과 민주주의, 법치의 근간을 허무는 소탐대실을 멈춰라. 지금은 법이든 권력이든 못할 게 없고 방방곡곡 승리와 성공의 기운이 가득하다고 여기겠지만 역사의 교훈에는 자비가 없다. 착각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한번 망가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선례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든 언제라도 끄집어내 휘두를 수 있는 무적, 무소불위의 칼들은 언젠가 그 장본인들을 겨눠 날아들 수 있다. 정치가 이성을 찾지 못하면 국민주권도 민주주의도 결국 거짓의 향연으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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