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도 같은 흐름…독일·영국·튀르키예 수출 폭증
관세 부담에 발목 잡힌 미국 시장, 현지 생산으로 물량 축소
유럽은 전기차가 성장 견인차…현대차·기아 46% 급증
교역지도 재편…단기 해법은 ‘미국 수익성 방어+유럽 물량 확대’

한국 자동차 수출 지도가 뚜렷하게 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율 관세가 본격화되면서 미국향 물량은 줄고 유럽과 독립국가연합(CIS) 등으로 수출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대미 수출 의존도가 절반을 넘었던 구조가 균열을 맞고 있다는 평가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액은 477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최대 시장인 미국향 수출은 202억92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1% 급감했다. 반면 유럽연합(EU)과 CIS는 각각 62억9100만 달러, 41억7300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1.4%, 29.2% 증가했다. 미국 부진을 유럽과 CIS가 메우면서 총수출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운 셈이다.
재고물량 소진으로 25% 자동차 관세 영향이 본격 반영된 8월 수출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5.2% 줄었으나 EU는 54%, CIS는 73.2% 급증했다. 특히 독일(118.7%), 스페인(54.5%), 네덜란드(110%), 영국(115.7%), 튀르키예(96.1%) 등 주요국에서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수출 지역의 지형이 단기간에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시장의 감소는 관세 부담과 현지 생산 확대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윤혁진 SK증권 연구원은 “관세 영향이 큰 미국향 감소분을 유럽향 증가가 상쇄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의 전기차 생산이 늘면서 대미 전기차 수출이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비중은 지난해 전체 자동차 수출에서 51.5%를 차지했지만 올해 상반기 말에는 49.3%로 내려왔다. 10년 넘게 이어진 상승세가 꺾인 것이다.
반대로 유럽은 전기차 수요 회복세에 힘입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올해 1~7월 유럽(EU+유럽자유무역연합체+영국) 전기차 등록은 전년 대비 25.9% 증가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46%에 달해 시장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관세 부담이 없는 지역에서 친환경차 경쟁력이 발휘된 사례로 그룹 차원에서의 전략적 전환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에 4년 만에 참여해 브랜드 노출을 확대했다. 신차와 보급형 전기차 모델을 대거 공개하며 현지 시장 공략에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현대차·기아의 유럽 전기차 판매는 20만 대 돌파가 유력하다. 7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10만6000대로 역대 최단 기간에 10만 대 고지를 넘어섰다.
이처럼 미국은 고율 관세와 현지화 압력 속에서 수익성 방어 국면에 들어간 반면, 유럽은 전기차 판매를 앞세운 성장 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CIS 역시 러시아·카자흐스탄 등에서의 수요가 회복되며 수출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업계는 단기적으로는 미국 수익성을 지키면서 유럽 전기차 물량으로 총량을 끌어올리는 전략이 병행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미국 시장은 여전히 한국 자동차 산업의 핵심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 자동차 대미 수출액은 200억 달러를 넘어 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관세 환경이 완화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점유율 방어가 어려울 수 있고 투자와 생산 전략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관세 환경이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지역별 상쇄 전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수요 확대라는 유럽의 기회 요인을 살리는 동시에 미국 시장에서의 불리한 조건을 방어하는 이중 과제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