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문직 취업비자(H1B) 발급 수수료를 기존의 100배 수준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히면서 국제 사회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미국의 핵심 산업 현장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고급 인력 유입이 사실상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방송된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트럼프의 두 가지 정책이 충돌하고 있다”며 “한쪽은 반이민, 다른 쪽은 제조업 부활인데 서로 상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미국이 자국 입맛에 따라 고급 인력만 받겠다는 건데, H1B 비자를 통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인도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외국 인력을 쓰는 기업에도 엄청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H1B 비자는 매년 전 세계 수십만 명이 신청하는 대표적인 전문직 취업 비자다. 현재 미국 취업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45%에 불과하지만 IT·과학기술·금융 분야를 이끄는 고급 인재들이 주로 활용한다. 신청자의 70%가량은 인도 출신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이 약 13~14%, 한국은 약 1%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번 수수료 인상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될지 아직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김 의원은 “처음에는 연간 갱신 때마다 받는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이후 백악관이 신규 발급 시 한 번만 받는다고 말을 바꿨다”며 “트럼프가 서명한 뒤에도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상황이라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전면 적용된다면 한국은 현재 2천 명 수준의 E비자 보유자를 기준으로 약 2800억 원의 부담을 져야 한다”며 “따라서 우리는 비자 면제를 추진하거나 쿼터 확대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도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미국은 전 세계 최고 두뇌들이 모이는 나라였고 그게 미국의 경쟁력이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H1B 비자를 받는 사람들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테슬라 같은 미국 최고 기업들에서 일하는 인재들인데 이 길을 막으면 결국 중국이나 인도로 가게 된다”며 “미국은 경쟁력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연구위원은 이번 조치를 풍자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가 내세우는 ‘Make America Great Again(MAGA)’은 사실상 ‘Make America Small Again’이 되고 있다”며 “미국 유권자들도 이미 75%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공화당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트럼프식 정책의 정치적 파급력을 언급했다.
한국에도 여파는 불가피하다. 김 의원은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사례를 언급하며 “합법적 비자를 받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단기 비자나 ESTA로 현지에 들어가 있던 전문직들이 많았다”며 “이번 인상으로 같은 문제가 재발하거나 공기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도 “한국 기업이 비자 쿼터를 늘려도 수수료가 1억 4천만 원에 달하면 현실적으로 인재 영입이 어렵다”며 “결국 공장 가동 지연 같은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적으로는 인도와 중국의 반사이익이 거론된다. 인도는 전체 H1B 발급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조 연구위원은 “인도의 인재들은 중국이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은 이미 과학기술 인력 유치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황은 반미 연합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EU와 일본도 미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과의 협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