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사 美비자 설명회서 안내
산업부는 "기업 관행" 책임론 언급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에서의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와 관련해 불과 두 달 전 외교부가 “B-1(단기상용) 비자가 가장 안전하다”고 기업들에게 권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기업들은 정부 권고대로 움직였음에도 현지에서는 불법 취업자로 낙인찍힌 셈이다.
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B-1비자가 사실상 불법에 가깝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으면서 정부 내 엇갈린 메시지가 기업 현장의 혼란을 키우고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4일 본지가 입수한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외교부 관계자는 7월 서울 양재 엘타워에서 열린 ‘미국 OBBB 법률 및 비자 대응 전략 설명회’에서 배터리 기업들을 대상으로 “미국 출장 시 B-1 비자를 통해 입국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안내했다. 이 자리에서는 ESTA(전자여행허가) 입국 거절 시 반드시 B-1 발급받아야 한다는 권고도 명시됐다.
그러나 “B-1 비자가 합법적 활동을 보장한다”는 외교부의 설명과 달리, 현지 단속에서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B-1 비자는 본래 비즈니스 협상·컨퍼런스 등 ‘비노동성 활동’에 한정된 비자다. 생산라인 투입이나 건설 현장 참여는 불법으로 간주되는 반면 장비 설치·시운전 교육은 합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실제 단속 현장에서는 이 경계가 모호해 근로 행위로 오인받을 소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민법 전문인 이경희 법무법인 에스엔 미국 변호사는 “B-1 비자를 가진 상태에서 미국 공장 현장 사무실로 출근해 근로자들과 함께 작업에 투입되면 근로행위로 간주될 소지가 크다”며 “미국 근로자를 대체하지 않는 활동이라도 현장 사정에 따라 자칫 이민법 위반으로 오인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민정책 관련 기관의 한 관계자는 “막상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변수가 생기는데, 가령 사람이 부족해서 라인에 투입되면 이를 물리적인 노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정부 매뉴얼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단속관을 설득할 수 있는 증빙이 어렵다는 점은 꾸준히 우려됐다”며 “미국의 단속 강화 기조를 고려해 보다 정교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정부 부처 간 해석마저 엇갈린다는 점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내 기업들이 최근 미국 비자가 잘 안 나오다보니, 원래는 이런 것이 금지돼 있는데 편한 것을 받아서 간 면이 있다. 미국 내 이슈와 기업들의 관행이 겹친 것”이라며 사실상 기업 책임론을 언급했다. 외교부가 “안전하다”고 안내한 것과는 배치되는 해석이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2일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와 쿼터 신설 등 제도 개선을 미국과 협의 중”이라며 “부처 간 워킹그룹을 통해 일관된 가이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현장의 혼선을 해소하기 위해 양국과 부처 간 일관된 해석과 구체적 가이드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대응 체계를 개선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숙련 인력이 구금될 것이라곤 외교부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정부가 기업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확실한 지침과 사전 조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