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출 기업·교민 지원 작동 안해
위기관리시스템 개선 기회 삼아야

9월 4일 미국 조지아주 현지 공장을 건설 중이던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건설현장에서 대규모 불법체류자 단속이 벌어졌다. 미국 이민 당국은 총 475명을 체포했고, 그 가운데 300명가량이 한국 국적자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이민법 집행을 넘어 한국 사회와 기업, 그리고 정부에 깊은 충격을 안겼다. 대규모 투자로 한미 협력을 확대해가던 한국 기업들에는 경영 불확실성을, 교민 사회에는 불안감을, 정부에는 외교적 무력감을 남겼다.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후 내내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세워 지국 이익을 극대화해왔다. 이번 단속도 그 연장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제적으로는 불법 이민 억제를 통해 넘쳐나는 잠재적 밀입국자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고, 정치적으로는 불법체류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프레임을 강화하여 미국 내 자신의 지지층 결집을 도모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미국 법과 노동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지 않으면 우방국이라도, 투자기업이라도 예외 없이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은 불법 이민 척결이라는 명분과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계산, 외국 자본에 대한 압박 의도가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의 대처다. 대규모 단속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거나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단속 직후 외교부는 “우리 국민의 권익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지만, 외교적 교섭이나 한국 투자기업 보호조치 등 실질적 대응은 미흡했다. 특히,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 단속은 미국 당국이 수개월 동안 준비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민 사회는 불안에 휩싸였지만 사태 이후 대외국민에 대한 지원 역시 미비했다.
이 사건은 한국 정부가 미국 내 우리 투자 기업 및 교민 사회에 대한 정보 수집과 조기 대응 능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낸 사례로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시스템으로는 위기 발생 후 대응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는 외교력 부족의 문제이자, 정부 전반의 위기관리 시스템 부재에서 비롯된 구조적 한계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거를 단죄하기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향후 과제로 첫째, 외교적 역량 강화가 절실하다. 주미 대사관과 외교부가 긴밀한 소통 채널을 마련해 미국 정부와 동등하게 협상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이참에 정부는 미국 전문가 및 실력자들과의 네트워크 형성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실용이란 준비하는 자만이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양국 간 협상이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투자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최근 정부와 국회는 상법개정,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주52시간제, 그리고 최저임급 상승 등 기업을 옥죄는 입법 활동이 다수였다. 특히, 시대 변화에 따른 KOTRA 역할도 변해야 할 것이다. 정부 고위직 해외 의전사무실이라는 비아냥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현지 노동법과 규정을 온전히 준수할 수 있도록 교육, 법률 자문, 노무 관리 시스템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교민 사회 권익 보호도 놓쳐선 안 된다. 불법체류 여부와 관계없이 현지 한국 교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법률 상담 서비스, 긴급연락망, 통역 지원체계가 상시 운영돼야 한다. 교민 보호는 단순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국가 위상과 직결된 문제다.
넷째, 정보 수집·분석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 미국 내 정치·경제·이민 정책 동향을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예상치 못한 단속’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현지 언론 모니터링은 물론, 전문가 네트워크, 교민 사회, 기업과 연결된 다층적 정보망이 필요하다.
조지아주의 현대차·LG 공장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 단속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정치 지형의 변화가 한국 기업과 교민 사회에 얼마나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동시에, 한국 정부가 해외에서 자국민과 국익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더 치밀하고 선제적인 전략을 가져야 하는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대응”이 아니라 “사전 대비”가 관건이다. 외교력, 기업 지원 체계, 교민 보호망, 정보 분석 역량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한다. 한국 정부가 이번 사태를 뼈아픈 반면교사로 삼지 못한다면, 또 다른 사태로 우리의 국익이 흔들리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