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분쟁 제도가 의사들에게 과도한 사법리스크를 부담시켜 필수 분야 기피 현상을 야기한다는 우려가 크다. 전문가들은 의사들을 형사고소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을 모은다.
대한의사협회는 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서 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의료분쟁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했다.
공청회에는 김택우 의협회장을 비롯해 서종희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종길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등 법률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도 참석해 환자 입장을 대변했다.
현재 정부는 법률에 따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운영하며 다툼을 조정·중재한다. 중재원과 별개로 민사소송, 형사소송도 진행될 수 있다. 의협은 의료사고에 대한 배상에 대비해 의료배상공제조합을 운영한다.
이날 ‘의료사고 민형사 소송 전반에 대한 비교법적 고찰’ 주제를 발표한 서종희 교수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7459건의 의료분쟁이 조정 절차를 밟았다. 매년 약 2000건의 조정 신청이 접수되며, 이 가운데 약 70%인 1400여 건이 실제 조정 절차로 넘어간다. 같은 기간 형사소송의 경우 총 81명의 의사가 재판을 받았고, 31명(38%)은 무죄로 결론이 났다. 나머지 26명은 벌금형, 22명은 금고형 이상의 집행유예, 2명은 금고형 이상을 받았다. 민사소송 역시 매년 700~900건 수준으로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법정공방으로부터 보호하되, 환자는 피해를 빠르게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 교수는 “독일, 스위스, 미국 등은 법률 규정이 한국과 유사하거나 오히려 환자에게 더 유리한 측면이 있음에도 실제 적용에 있어선 의료진 책임 강화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라며 “한국은 형사뿐 아니라 민사적으로도 예외를 넓게 인정해 의료진에게 과도한 법적 부담을 지우는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경과실에 대해서는 형사 책임을 면제하고, 민사 책임을 통해 환자의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해야 한다”라며 “필수의료가 가지는 위험성을 존중하고, 이를 형사책임을 판단할 때에도 반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 역시 “기본 방향은 환자 측의 신속한 피해 보상을 위해 의료진의 민사책임을 강화하되, 형사고소의 남용을 막기 위해 일정한 경우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면제할 수 있는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라며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진의 의료배상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중대한 의료과실의 기준을 의료과목별로 명확히 설정할 기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환자단체에서도 형사소송보다 민사배상으로 분쟁을 해소하는 방안에 동의했다.
윤 대표는 “피해자가 형사고소를 하는 이유는 비슷한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도록 할 목적도 있지만, 부족한 민사배상액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라며 “통상적으로 민사배상은 의료기관에, 형사고소는 의사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데, 민사배상을 높여 형사고소를 막는다면 의사 개인의 소송 부담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의료분쟁은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의료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다툼이다. 의료계는 의사들이 산부인과와 응급의학과 등을 기피하는 원인으로 잦은 의료분쟁을 지목한다.
이달 5일에는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의 한 교수가 분만을 담당한 아기의 뇌성마비 진단과 관련해 불구속기소 되자,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성명을 통해 “형사 기소는 산과 교수의 이탈, 고위험 분만 마비 등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규탄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