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월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한국인 선교사 백 모씨가 1월 간첩 혐의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백 씨는 러시아 국가기밀 정보를 외국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로 체포되고 나서 한 달 만에 모스크바 인근 ‘레포르토보’ 교도소로 이감해 구금 중이었습니다. 보도에는 ‘러시아 법원이 백 씨의 구금 기간을 3개월 더 연장했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러시아 당국이 한국인을 간첩혐의로 체포하고 이 사실이 현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습니다.
외교부는 현지 공관이 백씨의 체포 사실을 인지한 후부터 변호사 선임과 영사 면담 등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보도가 전해진 이후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습니다. 정부 차원의 공식 발표는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렇게 구금 기간이 만료되고 또 연장될 때마다 본지는 다각적인 통로를 통해 백 씨의 근황을 취재했습니다. 현지 언론을 통해 백 씨의 국선 변호인을 알았고, 러시아 변호사협회 공식 질의를 통해 국선 변호인과 접촉했습니다. 다만 공개할 수 있는 백 씨의 근황은 무척 제한적이었지요. 구체적인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재판 일정도 공개되지 않은 채 구금 기간만 연장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측 국선 변호인 역시 본지의 질의에 여전히 제한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습니다. 다만 “매월 1차례 한국 대사관의 영사 조력을 받고 있다”고 밝힌 게 전부입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는 이른바 ‘인질 외교(Hostage diplomacy)’가 심심찮게 존재합니다. 특정 국가가 자국의 형사사법제도 틀 안에서 외국인을 잡아 가두고, 이를 악용해 외교적 양보를 얻어내는 행태입니다. 구금이 아닌 출국금지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무장단체나 범죄집단이 아닌, 특정 국가가 정부 차원에서 우리 국민을 1년 8개월째 낯선 땅에 억류하고 있습니다. 그가 억울하게 구금돼 있다면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할 때입니다. 외교가에서는 “러시아가 한국과 관계 개선 물꼬를 트는 시점에서 특정인의 구금 해제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 중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백 선교사 석방 물꼬를 반드시 러시아가 풀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한편 국가와 국가 사이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과 사고, 나아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대부분은 조용히 이뤄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정부가 조용히 구금 선교사 백 씨 석방을 위해 움직이고 있을지 모릅니다. 거꾸로 이를 핑계 삼아 넋 놓고 방관 중일 수도 있습니다. 해당 사건의 공론화가 유리할지 조용히 결과만 기다리는 게 맞을지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평양을 여행하다 선전물을 훼손했다는 혐의로 북한에 1년 5개월 동안 억류됐던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혼수상태로 고향에 돌아왔으나 일주일 만에 숨졌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