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배의 금융의 창] ‘증시 선순환’ 시급한 시중 부동자금

입력 2025-08-2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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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평가연구원 비상근연구위원, 금융의 창 대표

안전자산에 머물러 투자 연결안돼
신뢰기반한 시장질서 확립이 관건
일관된 정책…기업으로 돈 흘러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증시를 “경제 자금 선순환의 핵심 통로”라 강조해왔다. 돈이 돌지 않으면 경제도 서지 않는다. 그러나 강조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시중에는 약 2000조 원의 단기부동자금이 쌓여 있지만, 은행 예·적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 같은 안전자산에 머물거나 부동산, 해외 증시로만 흐른다. 국내 증시 유입은 지지부진하고 혁신기업에는 좀처럼 가지 않는다. 돈이 부족한 게 아니라 돌지 않아 증시의 순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증시는 단순한 투기장이 아니라 가계와 기업을 이어주는 자금 순환 통로다.

일본의 경험은 분명한 경고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장기침체에 빠졌다. 막대한 유동성도 은행·우체국·국채 속에 갇혀 실물경제로 연결되지 않았다. 기업은 투자 대신 현금을 쌓아두었고, 가계는 소비를 줄였다. 자산 조정이 아니라 순환 경로 상실이 침체의 본질이었다. 지금 한국도 같은 위험 앞에 서 있다. 단기부동자금이 안전자산에만 머물거나 부동산과 해외 증시로만 흐른다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자금의 선순환이 끊기면 경제는 숨을 잃는다.

정부도 그동안 증시 회복을 위해 세제 완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소액주주 공제 같은 해법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자금을 움직일 수 없다. 세제는 보조적 유인일 뿐,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세금 조정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투자 환경이다. 기업은 이익을 정당하게 배분하고 경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정부는 일관된 규칙을 유지해야 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세제 혜택이 아무리 커도 자금은 국내 증시로 돌아오지 않는다. 반대로 소액투자자들이 안심하고 시장에 들어서면, 외국인과 기관도 자연스레 뒤따른다.

결국 관건은 신뢰 기반의 시장 질서다. 이를 위해 세 가지 과제가 시급하다. 첫째, 지배구조 개혁과 시장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대주주 전횡을 막고 소수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며, 회계와 공시의 투명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장기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같은 환원정책으로 투자자에게 명확한 신호를 줘야 한다. 대통령이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셋째, 혁신기업과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경로를 넓혀야 한다. 코스닥과 코넥스는 이미 성장기업의 진입로로 설계됐지만 실제 자금 유입은 미약하다. 정책금융은 돈을 직접 밀어 넣는 수단이 아니라, 초기 위험을 덜어내어 민간 자금이 움직이도록 신뢰를 보강하는 마중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

정책 목표도 분명해야 한다. 증시 정책의 초점은 코스피나 코스닥 지수를 끌어올리는 데 있지 않다. 시중 부동자금을 기업과 혁신산업으로 선순환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자금이 증시를 거쳐 기업 투자로 흘러가고, 경기 활성화로 이어진다. 이제 부동산 부양으로 경기를 떠받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직접금융을 통해 기업으로 돈이 흘러야 성장의 불씨가 살아난다.

그러나 문제는 실행이다. 대통령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최근 여당 정책 책임자가 조세 정의를 내세우며 세제 손질을 예고하자 오히려 자금 유입이 끊기고 유출 우려가 커졌다. 힘을 모아오던 증시는 다시 주저앉았다. 정책 목표와 실행 방향이 엇갈리면 시장은 곧바로 신뢰를 잃는다. 시장에 통하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일관된 바른 실행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다. 과잉유동성과 저성장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적 위기다. 돌파구는 자금의 선순환에 있다. 단기부동자금이 증시와 기업 투자로 흘러야 성장의 불씨가 살아난다. 이재명 대통령의 진단이 옳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강조가 아니라 결단이다. 결단 없이는 일본이 겪은 장기침체의 그림자를 우리도 피하기 어렵다. 경제를 살리는 길은 돈을 돌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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