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의 칼 끝을 발전공기업 통폐합으로 겨누면서 해당 기업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재정 건전성 강화라는 명분이 분명하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의 집단 반발과 지방자치단체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정책의 향방은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전기요금, 지역 경제, 고용 문제까지 파장이 번질 수 있어 이번 개혁은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한 접근이 요구된다.
이번 개편의 배경은 재정 건전성 확보다. 정부는 방만 경영과 중복 기능을 개선해 공공기관 효율을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제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단순한 숫자 줄이기가 아니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 향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렇지 않으면 개혁은 정치적 의도에 매몰되거나 노정 갈등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오해'의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과 이사진이 상당수 포진해 있는 상황에서 통폐합이 인적 청산으로 비칠 소지가 크다. 기획재정부가 평가 항목을 설계하고 점수를 부여하며 구조조정의 최종 권한까지 쥔 현실은 “플레이어가 심판까지 본다”는 비판을 낳았다. 정권마다 바뀌는 평가 지표는 제도의 일관성을 떨어뜨리고, 기관들은 장기 혁신보다 단기 점수 방어에 매달리는 구조에 갇혀 있다는 평가도 있다.
갈등의 가장 큰 뇌관은 노조다. 발전공기업 노조를 비롯해 공공기관 노조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 22일 성명을 내고 “절차적 과정이 생략된 채 갑작스러운 발표로 특정 공공기관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방식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도 19일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정부들에서도 공공기관에 대한 일방적 통폐합 과정에서 공공성이 훼손되고 노동권이 침해된 사례가 여럿 존재해왔다”며 “공공기관 운영 비용을 축소할 것이 아니라, 감세 정책 철회 및 부자 증세부터 선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인력 감축과 조직 축소가 현실화되면 파업과 집단행동으로 번질 가능성이 나온다.
지자체 반발도 만만치 않다. 발전공기업 통폐합 논의는 지역 재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방세법 제89조에 따라 발전공기업의 본사가 통합·이전될 경우 세수 귀속 지자체가 바뀔 수밖에 없다. 현재 중부발전은 충남 보령, 서부발전은 충남 태안, 남부발전은 부산, 동서발전은 울산, 남동발전은 경남 진주에 본사를 두고 있다. 통합 과정에서 본사가 이동하거나 축소되면 지방세 수입은 줄고 지역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나아가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리면 “본사 이전을 막겠다”라거나 “우리 지역에 유치하겠다”라는 등의 공약이 난무할 가능성이 크다.
전기요금도 개혁의 성패를 가를 최대 변수다. “발전공기업만 해도 신재생에너지 시대에는 전혀 다른 역할이 요구될 수 있다”는 김용범 정책실장의 말에 따라 석탄 발전을 줄이고 신재생 확대와 시장 개방을 키운다면 요금 상승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 독일처럼 구조 개편과 에너지 전환을 동시에 추진한 나라에서도 가정용 전기요금은 꾸준히 올랐다. 요금 인상은 국민에게 직접 체감되는 부분이어서 정책 추진의 정당성을 흔드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공공기관 개편은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 노조와 지자체의 집단 반발, 국민이 체감할 요금과 서비스의 변화를 동시에 안고 가야 하는 다층적 과제다. 정부가 “박힌 돌을 빼내겠다”는 논리로만 접근한다면 개혁은 또다시 사회적 반발 속에 멈춰 설 가능성이 있다.
이에 구조조정의 정당성은 재정 건전성과 효율성뿐 아니라 국민 생활에 긍정적 변화를 안겨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승준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속가능한 공공개관 개혁’이라는 동아시아연구원(EAI) 연구 보고서에서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 정책은 정권의 필요 및 ‘보여주기식’ 단기적 성과보다는 국민이 중심이 되고 공공기관의 자발성이 강화되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