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숫자는 감춘다’…‘데이터 정치’ 전 세계 확산 [글로벌 통계 수난시대 ①]

입력 2025-08-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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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5-08-27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미·중·러·튀르키예 등 통계 조작·차단 사례 잇따라
러, 우크라전 피해 감추고자 대규모 통계 조작
튀르키예, 통계청 수장 4차례나 교체
선진국도 통계 조작 예외 없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상황을 감추기 위해 통계를 대대적으로 조작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 상황을 감추기 위해 통계를 대대적으로 조작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정부가 불편한 통계는 축소·삭제하거나 왜곡해 발표하는 ‘데이터 정치’가 확산하고 있다. 경제·고용부터 인구·기후까지 권력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통계를 조작하거나 그 시도를 하면서 신뢰 위기가 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초 부진한 고용보고서가 나오자 당시 노동부 노동통계국 국장이었던 에리카 맥엔타퍼를 전격적으로 해임했다. 세계 각국 정책 입안자와 기업, 투자자들이 전례 없는 트럼프의 무역 질서 전복 시도와 정책이 물가·고용·가계자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려 애쓰고 있는 가운데 미국 통계 데이터에 대한 신뢰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국인 중국은 경기둔화 심화로 정부의 통계 수치 조작과 은폐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벌어진 천문학적인 인명과 경제적 피해를 숨기기 위해 경제, 인구, 범죄 관련 핵심 정부 통계를 대거 차단하고 있다.

전 세계 통계 데이터 은폐, 조작 사례를 추적하는 국제 민간 연구 프로젝트인 ‘투비프리사이스(To Be Precise)’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러시아 정부 웹사이트에서 이전에 공개되었던 700개 이상의 데이터 세트가 삭제됐다. 세관 통계와 중앙은행의 금 및 외화 보유액 관련 정보는 비밀로 전환됐으며, 대기업들은 재무실적이나 고위 경영진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사라졌다. 2023년에는 정부가 석유·가스 생산 통계를 비밀로 분류했으며 지난해는 휘발유와 디젤유 생산 통계 발표도 중단했다.

인구통계 자료는 특히 큰 영향을 받았다. 러시아 통계청은 전쟁 발발 후 연령별·지역별 사망 통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망 원인 자료까지 비공개 처리했는데, 이는 군 사상자를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활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출산율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자, 출생·사망·혼인·이혼 관련 월간 자료와 지역별 인구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

러시아 정치 전문가인 예카테리나 슐만은 “정보 왜곡·비밀주의·데이터 억압·선전은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전문가들과 시민사회가 국가 상황을 이해하고 평가하며 정책결정자를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튀르키예 공식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vs. 독립 민간연구소 ENAG 추정 인플레이션. 단위 %. 갈색: 공식 CPI(7월 33.52%) / 빨간색: ENAG(7월 65.15%) / 파란색: 기준금리. 출처 ENAG
▲튀르키예 공식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vs. 독립 민간연구소 ENAG 추정 인플레이션. 단위 %. 갈색: 공식 CPI(7월 33.52%) / 빨간색: ENAG(7월 65.15%) / 파란색: 기준금리. 출처 ENAG
튀르키예 통계청은 오랫동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정부의 경제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2019년 이후 통계청(TUIK) 수장이 네 차례나 교체되자 야당은 정치적 개입을 주장했고 투자자 신뢰는 지속해서 추락했다. 물가·실업률 등 주요 통계를 축소 발표해 경제 불안을 가리려 한다는 비판이다. 메트로폴(MetroPoll)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튀르키예 국민의 61.7%가 통계청이 물가를 실제보다 낮게 발표한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란은 통계와 국민이 체감하는 수치가 크게 괴리된 것으로 악명 높다. 이란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1.2%로 2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식료품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 상승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란 경제매체 파이낸셜트리뷴은 이란 의회 산하 연구기관인 마즐리스연구센터 분석을 인용해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란 주민의 체감물가는 80% 이상이며 특히 식료품 등은 세 자릿수 영역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이 나라의 고질병인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통제했다는 칭송을 받고 있다. AP통신은 “아르헨티나는 과거 여러 정권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공식 통계를 조작한 사실이 적발됐다”며 “이에 장밋빛 통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민은 AP에 “이렇게 낮은 인플레이션율과 빈곤율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며 “슈퍼마켓 가격표를 보면 할인행사가 없는 식품은 절대 살 수 없는데 어떻게 통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선진국도 통계 조작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탈리아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이 처음 확산할 당시 실제 감염자 수가 공식 발표치의 약 두 배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04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15년간 ‘매월 근로통계’ 조사를 부적절하게 하는 방식으로 통계를 조작한 사실이 뒤늦게 적발돼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500인 이상 사업장은 전수조사가 원칙인 데 실제로는 전체의 3분의 1 정도만 조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해당 통계는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 성과를 부풀리는 데 쓰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과장하기 위해 실업률 등을 축소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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