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동훈의 사회읽기] 진짜 성장은 ‘사람’에서 출발한다

입력 2025-08-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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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표준화 교육, 전문성 기르기 어려워
현장 수요 분석해 체계적 설계 필요
인재 머무르고 싶은 환경 만들어야

지난 6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추격형 성장의 교과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생산가능인구는 빠르게 줄고, 투자는 위축되며, 생산성은 정체 상태다. 이제 한국경제는 추격이 아니라 선도국과 정면 승부해야 할 시점에 있다.

8월 22일, 정부는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했다. 기술선도 성장, 모두의 성장, 공정한 성장, 지속성장 기반 강화의 네 축으로 구성된 이번 전략은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나는 그 성공의 관건이 ‘전방위적 인재 확보’ 전략에 있다고 본다. 정부가 제시한 인재 양성, 해외 유출 방지, 해외인재 유치라는 세 갈래 전략은 ‘사람이 곧 성장’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그걸 설계하고 작동시키는 건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 전략은 과연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을까?

첫째, 인재 양성과 관련하여, 정부는 ‘AI를 한글처럼’ 가르치겠다는 포부로 전 국민 대상 AI 교육체계를 내놓았다. 초중고 리터러시 교육부터 전문가 대상 고급 과정까지 폭넓은 구상이다. 누구나 AI 시대를 살아갈 기본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 자체는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표준화의 덫이다. 산업 현장은 업종·지역·기업에 따라 필요한 역량이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획일적인 교육을 전 국민에게 일괄 주입하는 방식은 실제 현장과 괴리를 낳는다. ‘표준화된 교육’만으로는 전문성과 창의성을 끌어내기 어렵다. 특히 국가거점국립대, 사립대, 전문대, 직업훈련기관과 연계된 맞춤형 교육 트랙이 없다면 인재 양성은 수도권 중심으로 흐르고, 지방 청년의 수도권 유출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둘째, 국내 인재 해외 유출 방지 대책으로 병역특례, 급여 인센티브, 겸직 허용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지속 가능성은 의문이다.

병역특례는 늘 형평성 논란의 중심에 서 왔고, 인센티브는 일시적 유인책에 불과하다. ‘붙잡는 전략’은 있어도 ‘머무르게 만드는 환경’은 여전히 미흡하다. 인재는 처우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안정적인 연구비, 장기적인 직위, 자율성 있는 연구 문화, 기업과의 연결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이제는 단순한 보상 정책에서 벗어나, 인재가 스스로 머무르고 싶은 연구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전략을 재설계해야 한다.

셋째, 해외인재 유치 전략으로, 정부는 해외 석학과 신진 연구자 2,000명을 유치하겠다며 특별비자, 세제 감면, 귀국 트랙 등 파격적인 유인책을 제시했다. 전 세계적 해외인재 확보 전쟁에서 한국이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그렇지만 외국인만 챙기면 형평성이 무너진다. 외국인에게만 혜택이 집중되고, 국내 연구자에게는 비슷한 수준의 기회조차 없다면 내부 반발은 불가피하다. 인재 정책은 ‘밖’만이 아니라 ‘안’도 함께 챙겨야 한다. 균형 잡힌 지원 없이는 정책의 정당성도, 다문화 수용성도 확보할 수 없다.

세 갈래 방향 전략 모두 ‘인재 공급’ 중심적 발상에 치우쳐 있다. 교육을 통해 우수 인재를 많이 양성하고, 국내 인재의 해외 유출을 최대한 막으며, 비자와 혜택으로 해외 인재를 많이 끌어오는 데 치중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인재를 얼마나 모으느냐’가 아니라, ‘인재가 어디서 어떻게 쓰이느냐’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현장의 수요를 정확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역량을 기르는 체계적 설계 없이 단기성과에만 집중하면, 인재는 장기적 역량을 축적하지 못하고 소진되고 만다.

지금이 방향 전환의 적기다. 산업별·지역별 인력 수요를 면밀히 분석하여, 맞춤형 교육과 연결해야 한다. 장기적 연구비, 안정된 직위, 산학협력 생태계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국내외 인재를 동일한 기준으로 지원해 형평성과 유인 효과를 동시에 확보하고, 지역 인재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주거·교육·생활 기반을 갖춘 정착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은 AI와 인재 확보라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 성장의 본질은 사람이다. 수치로 측정되는 인재가 아니라, 현장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머물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이 한 가지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어떻게 길러내고, 어떻게 붙잡고, 어떻게 불러올 것인가.” 그 답을 찾지 못하면, ‘진짜 성장’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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