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룡 공기업' LH의 그림자…조직 융합·노동계 반발은 넘어야 할 산
단순한 몸집 줄이기 넘어 기능 중심의 '정교한 재편'이 성공 관건
이재명 정부가 공공기관 통폐합알 추진하는 배경에는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이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700조 원에 육박하는 공공기관 부채와 방만 경영 문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과거 이명박(MB) 정부 시절을 뛰어넘는 고강도 구조 개혁을 통해 재정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거대 통합 공기업의 조직 내부 화학적 결합, 조직ㆍ인력 감축에 따른 노동계의 반발 해소 등 풀어야 과제도 산적해 있다.
24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9월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통폐합안을 포함한 정부 조직개편안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통폐합은 ▲중복 기능 기관 통합 ▲핵심 업무 집중 및 기능 조정 ▲민간 협력 확대 ▲재정 부담 완화 및 인력 재배치 등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우선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들을 통합해 운영 효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정책 연구 기관이나 공공 금융 기관 등 유사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을 하나로 합쳐 관리함으로써 중복 비용과 업무 혼선을 줄인다는 취지다. 기관마다 수행하는 업무를 평가해 핵심 업무만 남기고 나머지는 폐지하거나 다른 기관으로 이전한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이 본연의 기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할 예정이다. 일부 공공기관 기능은 민간에 과감하게 이양해 효율성과 전문성을 제고한다. 예컨대 교육, 연구, 기술 서비스 등 민간에서 수행 가능한 업무를 이전함으로써 공공기관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기관 통·폐합으로 발생하는 잉여 인력은 다른 공공기관이나 사회적 일자리로 재배치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통해 인건비와 시설 운영비를 줄임으로써 정부 재정 부담 완화 효과를 더욱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에다 자산 매각 등 단순히 기관 수를 줄이는 것을 넘어서는 정부 조직 운영 효율성 극대화를 도모할 방침이다.
이번 통폐합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추진됐던 MB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2009년 당시 정부는 41개 기관을 16개로 통폐합해 약 1조 원의 재정 효과를 거뒀다.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를 합쳐 거대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출범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능이 중복되거나 유사한 기관들을 과감히 합쳐 비효율의 근원을 제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15년 전 MB정부의 정책을 다시 소환한 이유는 명확하다. 빠듯한 국가 재정 상황에서 공공기관의 부채를 이대로 안고 갈 수는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집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공공기관 부채는 741조 원에 달해 국가 경제의 잠재적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자 비용만으로도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 없이는 재정 건전성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위기의식이 정부 내에 팽배하다. 정부는 이번 통폐합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MB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재정 건전성 확보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통폐합 과정에서 풀어야 과제는 만만치 않다. 이는 MB정부의 공공기관 통폐합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9000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으로 재탄생된 LH는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는 비대함에서 오는 비효율과 부실이라는 문제점을 안았다. 특히 조직 내부의 화학적 결합 실패, 기능 중복으로 인한 비효율, 끊이지 않는 부패와 비리 사건 등은 '공룡 공기업'인 LH의 대표적인 폐해로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발전 자회사 등 거대 공기업들 간 통폐합을 검토하고 있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공기관 통폐합은 필연적으로 조직의 축소와 인력 감축 문제로 이어진다. 당장 관련 기관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과거 MB정부 당시에도 통폐합 과정에서 해당 기관 임직원들의 극심한 저항과 사회적 갈등이 빚어진 바 있다.
이창기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재명표 공공기관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몸집 줄이기를 넘어선 기능 중심의 정교한 재편이 필요하다"며 "유사·중복 기능을 과감히 통폐합하되, 기관별 전문성과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설계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내부 갈등과 비효율을 최소화할 투명하고 체계적인 관리 방안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