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액암 환자에게 새 생명을 주는 조혈모세포이식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 되고 있다. 이식 후 절반가량의 환자에게 발생하는 이식편대숙주질환(GVHD)은 전신을 침범하는 중증 합병증이지만, 치료 접근성이 낮아 환자들이 치료제를 눈앞에 두고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중증·희귀 합병증 치료환경 개선 정책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치료제는 있지만 급여 지원이 뒤따르지 않아 환자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GVHD는 기증자의 면역세포가 환자의 장기와 조직을 공격해 발생한다. 피부·간·폐·구강 등 전신에 나타나며 만성 GVHD는 섬유화로 장기 기능 상실과 평생 장애,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혈액암 완치를 목표로 조혈모세포이식을 진행하지만 이식 이후 많은 환자들이 GVHD 등 합병증 발병 위험에 노출돼 추가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혈액암 완치를 위해 이식을 받았지만 환자의 44%는 3개 이상의 장기에서 GVHD 반응이 나타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며 “특히 폐 침범 환자의 경우 사망 위험이 60%에 달한다”라고 말했다.
한국혈액암협회 조사에 따르면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 경험 환자의 59%가 ‘이식 후 삶이 더 힘들다’고 응답해 사회·경제적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신체적 고통과 기능 상실, 섬유화로 인한 증상 악화, 경제적 부담 등으로 환자의 삶의 질 저하가 급격하게 나타난다. 질환의 중증도 및 심각성에 비해 정책적·제도적 지원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현재 국내 가이드라인은 스테로이드제를 1차 치료제로 권고하지만 환자 70%는 반응하지 않는다. 2차 치료제인 룩소리티닙도 절반은 효과가 없어 결국 3차 치료제로 넘어간다. 3차 치료제인 벨루모수딜(제품명 ‘레주록’)은 지난해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았으나 아직 급여가 적용되지 않았다.
벨루모수딜은 이식편대숙주질환의 염증과 섬유화 유발 물질로 알려진 ROCK2 신호전달 경로를 선택적으로 차단해, 나머지 면역 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질병의 진행 및 장기 숙주 반응을 조절하는 특성을 가진다.
곽대훈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GVHD는 단순한 합병증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희귀질환”이라며 “스테로이드 불응 환자가 많고 치료제가 있음에도 급여 사각지대에 놓여 치료 접근성이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다.
산정특례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현행 제도는 혈액암 환자에게 산정특례를 적용해 5년간 의료비의 5%만 부담하도록 돕지만, 이 기간이 지나고 완치되지 않았어도 환자 부담률이 30%로 급증한다. 이 때문에 GVHD 환자는 암 치료 후 다시금 막대한 치료비와 싸워야 한다.
곽 교수는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암 투병 이후 합병증으로 제2의 투병생활을 겪는 환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섬유화 치료 지연은 환자 생존율과 직결되는 만큼 제도 사각지대를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신약이 나와도 건보 적용이 제한돼 환자들이 고통을 견디고 있다”며 “이는 단순히 치료비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서 제도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정책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