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자발적으로 재편계획 짜서 제출해야
‘정부 주도형’ 일본보다 개입 수준 낮을 듯
미국은 시장이 주도…정부 간접적 관여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 개편 방향성을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과거 일본 사례 연구 용역을 발주하는 등, 일본 구조조정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부가 제시한 개편안은 자발적 통합에 정부가 당근을 주겠다는 점은 일본 모델과 비슷하다. 하지만 실행 순서나 정부 개입 수준은 다르다. 결국 기업 자발성에 방점을 찍으며 정부가 깊숙하게 개입해 구조개편을 끌고 나간 일본과 차별성을 둔 모양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석유화학산업 재도약을 위한 산업계 사업재편 자율 협약식’을 열고 정부의 3대 재편 방향을 밝혔다. 3대 방향은 △과잉 설비 감축 및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영향 최소화다.
여기에 발맞춰 업계는 △270만~370만t(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 △고부가 친환경(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최소화 등을 주안점으로 두고 고민에 들어갔다. 연말까지 자발적으로 재편 계획을 짜서 공개하는 방식이다.
포함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공정거래법 규제 완화나 정유-석화 수직통합 지원 등의 내용은 언급에서 빠졌다. 정부는 업계가 제출한 계획이 진정성 있다고 판단되면 그 뒤에 규제 완화, 금융, 세제 등 종합 대책을 마련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사업 재편을 미루며 타 기업의 감산 효과만 기대하는 무임승차 기업에는 지원을 배제하는 패널티를 주겠다고 했다.
일본은 독점금지법 적용을 배제하고, 효율적 설비로 생산 집중·과잉설비 처리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시행하는 등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섰다. 일본 정부가 어느 공장을 닫을지, 어떤 설비를 유지할지 까지도 명확히 못 박았다. 통합·감축 방향을 유도하는 수준에 머무른 한국보다 더 깊게 개입한 셈이다. 이 차이는 구조개편 실행 속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안은 일본보다 미국 사례와 더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정책유도형인 일본과 다르게 시장 주도형 구조개편이 이뤄졌다. 구조조정 키(key)를 정부가 아닌 미국은 원유 공급처인 대형 석유회사가 잡았다. 미국은 오일쇼크로 범용제품 수익성이 하락하자 석유부문(업스트림)과 화학부문(다운스트림)을 통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로 엑손모빌(ExxonMobil), 셰브런(Chevron) 등 대형 화학업체가 정유설비를 인수해 원가 경쟁력을 높인 종합 화학사로 거듭났다. 기존 설비를 매각한 화학업체들은 매각 대금을 활용해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 비중을 늘렸다. 정부는 직접적인 개입보다 반독점 심사·환경 규제 수준에서만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