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진 칼럼] 대전환 시대에 ‘살림’이 가지는 의미

입력 2025-08-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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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X재단 이사장

구성원 아우른 삶의 순환이자 공존
산업혁명 뒤 무한경쟁 추구로 변질
상생 지향하는 나침반 역할 살려야

‘살림’은 한국어가 세계에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개념 중 하나다. 단순히 가사 노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살림’은 생명을 보존하고 키워나가는 모든 행위를 포괄한다. 죽어가는 것을 되살리고, 약한 것을 강하게 하며, 개체의 생존이 서로의 살림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상호 의존적 생명관을 담고 있다.

자연생태계를 보라. 모든 생물종은 타자의 살림에 이바지하고, 심지어 죽어서도 살림에 기여한다. 미생물과 박테리아는 표토를 비옥하게 하고, 표토는 식물을 살리고, 식물은 초식동물을,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을 살린다.

그리고 그들은 사체가 되어 다시 흙 속에서 미생물을 살리는 순환이 계속된다. 이 과정에 어떤 폐기물도 없다. 모두 순환되는 것이다. 또한 이 거대한 생태계는 어떠한 중앙통제도 없이 ‘살림’의 원리로 순환하며, 전체가 조화를 이룬다. 이것이 수억 년을 이어온 ‘순환, 공존, 자율의 에코로직’이다.

한국 전통사회에서 살림은 단순한 경제적 의미를 넘어 구성원들을 돌보고, 한정된 자원을 지혜롭게 활용하며, 관계를 중시하는 창조적이고 지속가능한 생활 경영의 철학이자 실천이다. 이는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안정과 공동체적 유대를 바탕으로 한, 한국 고유의 생활 철학으로, 이웃과 사회와의 상생까지 포괄하는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

장독대 발효음식, 온돌과 순환형 주거 문화, 김장 문화 등도 살림을 드러내는 독특한 모습이다. 품앗이, 두레, 새마을운동, 금 모으기 운동 등도 살림의 공동체적 유대강화를 드러낸 활동이다. 또한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등 급속한 사회 변화 과정에서도 이러한 살림의 정신이 사회적 결속력과 적응력 그리고 회복력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근대 산업문명의 무한성장주의와 자연 착취적 경향은 ‘지배, 성장, 경쟁의 휴먼로직’을 강화하였다. 생태적 사고와 공동체적 가치들이 존재했지만 휴먼로직의 질주를 막지는 못했다. 결국 휴먼로직은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고, 무한성장을 위해 무한 경쟁을 추구했다.

지금도 우리는 자연은 물론이고 이웃과 심지어는 자신까지도 위험에 빠뜨리는 질펀한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파괴, 자원 고갈, 사회 양극화라는 병적 증상의 악화다.

이제 대전환이 필요하다. 휴먼로직을 뛰어 넘는 새로운 로직이 절실하며, ‘살림’은 새로운 로직에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살림은 개체의 생존이 전체의 번영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고, 경쟁보다는 협력을, 지배보다는 공존을, 착취보다는 상생을 추구하게 할 것이다.

환경보호는 비용이 아니라 삶의 의미요 미래 세대를 위한 살림이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자연과 조화로운 살림의 실천이다. 순환경제 또한 모든 자원이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살림의 구현이며, 생물다양성 보전은 지구 생태계라는 거대한 살림 공동체를 지켜내는 일이다.

개인들에게도 나만 잘살면 된다는 개인주의를 넘어, 내 삶이 다른 사람과 자연의 살림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소비할 때도 “이것이 누군가의 살림에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게 되고, 일할 때도 “이 일이 세상의 살림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이러한 살림의 실천은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과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다.

경쟁과 성장만을 추구하다 막다른 길로 들어선 인류에게, 살림은 상생과 순환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물질적 소유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리고, 지속가능한 순환에 기여했는가가 진정한 행복과 풍요로움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

지역 농산물을 선택하여 농민의 살림을 돕고, 재활용품을 활용하여 자원의 순환에 기여하며,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여 공동체의 살림을 강화하는 것들이 모두 살림의 실천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살림부자’들이 더 많이 존재할수록 풍요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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