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기업 불확실성 확대에 부담
장부 밖 ‘숨은 빚’ 건전성 리스크
대출 확대 압박까지 이중고 직면

4대 시중은행이 떠안은 지급보증 규모가 74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겉으로는 장부에 잡히지 않는 부외항목이지만, 기업이 부도나거나 무역거래에 차질이 생기면 은행이 대신 갚아야 하는 ‘숨은 빚’이다. 최근 미국의 대(對)한국 관세 부과로 수출기업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정부가 기업 대출과 투자를 늘리라는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은행권 건전성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2025년 6월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확정·미확정 지급보증 규모는 총 74조897억 원으로 집계됐다. 확정지급보증이 55조3214억 원, 미확정지급보증은 18조7683억 원이다.
은행별로는 하나은행이 21조8104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신한은행(19조9269억 원), KB국민은행(16조8173억 원), 우리은행(15조5352억 원) 순으로 집계됐다.
지급보증은 고객이 채무를 상환하지 못했을 때 은행이 대신 갚아주겠다고 약속한 금액을 뜻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은행의 보증을 통해 신용도를 높이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확정지급보증은 은행이 구체적인 채무를 인수하는 형태의 계약으로 책임져야 하는 금액이 이미 확정돼 있다. 반면 미확정지급보증은 보증은 서 있지만 주채무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다르다. 언제, 얼마가 현실화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고 리스크를 관리하기가 더 까다롭다.
시중은행의 지급보증은 대부분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무역거래 과정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이 담보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은행이 지급보증을 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은행은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거래가 틀어질 경우 해당 금액을 책임져야 한다. 회계상 부채로 잡히지 않는 부외항목이지만, 부실이 현실화되면 곧바로 은행 재무제표에 반영돼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최근 미국이 주요 교역 품목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잇달아 부과하면서 우리 수출기업들의 수익성 악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은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최대 50%의 관세를 매기기로 했고, 자동차와 전자부품에도 1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산업연구원은 관세 인상으로 전체 수출액이 전년 대비 1.9%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수출 업황이 악화하면 결국 은행이 보증한 거래에서 부실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커진다.
여기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협상 이후에도 품목별 관세 조정을 위한 추가 행정명령을 내지 않고 있는 점도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제품에 대해 최대 300%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검토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등 이처럼 무역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기업 대출과 투자를 늘리라는 압박까지 가하면서 은행권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정책적 요구에 따라 자금 공급을 확대해야 하지만 만약 경기 둔화와 맞물려 부실이 발생할 경우 은행은 지급보증에 이어 대출 손실까지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급보증은 기본적으로 조건부로 작동한다"며 "수출기업 업황이 관세 영향으로 악화하면 기업 부실이 현실화돼 은행이 확정부채를 떠안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