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2조 원 이상 대기업 200곳 전방위 변화
경제계, 소송 남발·해외 투기자본 공격 우려
소액주주 권한 확대로 지배구조 패러다임 전환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상법 개정안이 국내 기업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1차 개정안은 지난달 15일 시행이 확정됐고, 2차 개정안은 8월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3차 개정안은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3차 개정안까지 통과되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핵심 조항들이 순차적으로 도입되면서 약 2600개 상장사가 기업 규모에 따라 차별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자산 2조 원 이상 대기업 200여 곳은 이사회 구성부터 자본 운용 전략까지 경영 전반의 재편이 불가피하고, 소액주주와 기관투자자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의 권력 구조가 재편될 전망이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시행된 1차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약 2600개 전체 상장사에 적용되는 이 조항으로 인해 주주 대표소송의 법적 근거가 강화되고, 이사들의 의사결정 과정이 더욱 신중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함께 시행되는 '3%룰 강화'도 주목할 변화다. 기존에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각각 3%씩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 개정안은 이를 합산 3%로 제한한다. 이는 2020년 상법 개정 당시 논란이 됐던 '지분 쪼개기'를 통한 우회적 의결권 행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완 조치다.
8월 처리를 목표로 추진 중인 2차 개정안은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 약 170~200개사를 대상으로 한다. 핵심은 집중투표제 의무화다. ESG행복경제연구소 조사 결과 코스피 상장사 169곳 중 단 9곳(5.3%)만이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현실에서 의무화가 시행되면 소수 주주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이 급증할 전망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현행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어 감사 기능의 독립성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를 목표로 하는 3차 개정안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전체 상장사에 적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민주당은 이른바 '더 센' 3차 상법 개정안 처리를 추진할 계획이다. 민병덕 의원은 신규 취득 자사주를 1년 이내 소각하되, 발행주식 총수의 3% 미만인 경우 2년까지 유예하는 안을 발의했다. 김현정 의원은 자사주 취득 즉시 소각 원칙을, 김남근 의원은 신규·기존 자사주 모두를 1년 이내 소각 대상으로 규정하는 안을 각각 제출했다.
주목할 점은 김태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배임죄 요건 완화안이다. 상법상 특별배임죄 조항을 전면 삭제하고 형법에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해 합리적 경영 판단에 따른 행위는 형사책임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는 경영진이 합리적 절차와 정보를 통해 내린 결정은 결과가 나쁘더라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토록 해 기업들이 R&D 투자 등 전략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의무화와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 강화 방안도 함께 논의될 예정이다.
3단계 개정안이 모두 시행될 경우 기업 규모에 따라 차별적으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자산 2조 원 이상 대기업들은 모든 개정안이 적용돼 집중투표제로 이사회 구성이 다양해지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로 내부 견제가 강화되며,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자본 운용의 유연성에 제약을 받는다.
이에 대해 지난해 11월 삼성, SK, 현대차, LG 등 16개 주요 기업 사장단은 긴급 성명을 통해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시달려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중견기업은 1차와 3차 개정안이 주로 적용돼 중간 수준의 영향을 받고, 중소기업은 이사 충실의무 확대와 향후 전자주총 의무화 정도만 적용돼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개정안은 주식시장의 권력 구조에도 변화를 일으킬 전망이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전자주총 확대로 소액주주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소액주주-기관투자자-경영진' 간의 새로운 균형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기관투자자들의 역할도 확대된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연계해 기관투자자들의 주주활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기업의 이익조정을 억제하고 주주환원 정책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다만 단계별 시행에 따른 기업들의 적응 부담은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상법 개정이 단계별로 추진됨에 따라 기업들의 체계적 준비와 시장 충격 최소화를 위한 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모든 개정안이 적용되는 대기업들의 경우 체계적인 대응 전략 수립이 필수적이다. 삼성전자 등 일부 대기업들은 이사회 운영 규정을 개정하고 주주 소통 채널을 강화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