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금리 하락·투자심리 위축 복합 영향
예탁금·MMF·CMA 등 대기자금도 사상 최대

시중자금 움직임이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대기성 자금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쌓이고 있지만 실제 투자나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돈의 흐름을 보여주는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2년 7개월(31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16.3회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10월(14.5회)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회전율은 예금 지급액을 예금 잔액으로 나눈 값으로 자금이 얼마나 자주 움직였는지를 나타낸다. 수치가 낮을수록 자금이 실제 사용처로 흐르지 않고 금융권 안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회전율은 지난해 말(2024년 12월) 20.2회까지 올랐다가 올해 들어 하락세로 전환됐다. 1월 17.3회, 2월과 3월 모두 17.6회를 기록한 뒤 4월 18.2회로 소폭 반등했다가 5월에는 다시 16.3회로 떨어졌다. 한 달 만에 1.9회 하락한 셈이다.
시장에서는 △투자·소비심리 위축 △부동산 대기 자금의 장기 체류 △갈 곳 잃은 유동성의 정체 등을 복합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최근 기준금리 인하 기조 속에서 시중은행과 2금융권의 예·적금 금리는 연 1~2%대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은 수시입출금 통장에 머물며 움직이지 않고 있다.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의 불확실성도 자금 흐름을 막고 있다. 4월 중동 지역 지정학적 1리스크가 고조되며 하루 만에 요구불예금이 6조 원 넘게 늘어났지만 해당 자금은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그대로 예치된 상태다. 단기 유동성이 금융권 내에 장기 체류하면서 회전율이 하락한 것이다.
부동산 투자 대기자금의 정체도 주요 요인이다. 기준금리 인하 전망과 함께 시장 반등 기대가 형성됐지만 실제 거래는 지연되고 있다. 매수 타이밍을 저울질하는 자금이 요구불예금에 묶이면서 회전율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금뿐 아니라 투자자예탁금,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자본시장 전반에서도 자금 정체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71조8000억 원으로 2022년 1월 말 이후 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MMF 설정액은 233조9000억 원, CMA 잔고는 91조3000억 원으로 각각 역대 최대 규모다.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리 하락만으로 자금 이동을 자극하거나 실물 투자로 연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평가다. 투자심리와 소비 여건이 회복되지 않는 한 유동성은 당분간 금융권 안에 머무를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는 낮지만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자금이 관망세로 돌아선 상황”이라며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유동성이지만 지금은 머물러 있는 자금이 많아 회전율 반등도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