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마스가 프로젝트, 합의에 최대 기여"
자동차 품목관세도 15%로…쌀·소고기 개방X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8월 1일)를 이틀 앞두고 진행된 한미 통상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미국의 대(對) 한국 상호관세는 25%에서 15%로, 자동차 품목관세도 25%에서 15%로 각각 10%포인트(p) 하향 조정됐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 경제·통상당국 고위급으로 구성된 관세 협상단을 중심으로 총력전을 펼친 한국은 미국에 약 3500억 달러(487조 원)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이번 합의를 이끌었다.
31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구 부총리와 김 장관, 여 본부장은 3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면담 끝에 한미 관세협상을 타결했다.
미국은 한국에 부과하려던 상호관세 25%를 15%로 내리고 한국의 주력 대미수출 분야인 자동차 품목관세도 25%에서 15%로 인하했다. 관세 부과를 예고한 반도체·의약품 등 타 품목관세도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약속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최소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미국에 약속했다. 당초 정부가 미 측에 제시한 투자 규모(1000억 달러)에서 3배 이상 늘었다.
세부적으로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협력 펀드를 포함해 미국 조선소 인수·확장, 선박 건조, 유지·보수·정비(MRO), 조선 기자재 등 국내 기업 수요에 기반한 이른바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조선산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기로 했다.
정부 협상단 수석대표로 협상에 참여한 구 부총리는 이날 협상 타결 이후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위해 지킬 것은 지켜내면서 한미 경제관계가 심화하고 업그레이드되는 상호호혜적인 결과를 이뤘다"며 "오늘 합의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부분은 '마스가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 설계·건조 능력을 가진 우리 조선 기업이 미국 조선업의 부흥을 도우면서 새로운 기회와 성장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미국이 조선에 대해 수요가 있다는 것은 출발 전 인지하고 있었다"며 "미국에 갈 때 1m 패널을 제작해 갔는데 첫 미팅 때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굉장히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협상을 이어가며 마스가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있었다"며 "우리 기업 분들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여기에 총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를 조성해 반도체, 원자력, 배터리, 바이오, 핵심광물 등 경제안보 관련 전략산업 분야 투자·대출·대출보증을 제공하기로 했다. 별도로 액화천연가스(LNG) 등 미국산 에너지를 4년간 1000억 달러 구매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을 완전 개방하기로 했지만, 당초 협상 카드에서 제외한 쌀·소고기를 포함하지 않은 것도 주요 성과로 꼽힌다.
구 부총리는 "농축산물에 대한 미 측의 비관세 장벽 축소 및 시장개방 확대 요구가 강하게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도 과채류에 대한 한국의 검역 절차에 대해 문의하며 이에 관심을 표명했다"면서도 "우리 협상단의 끈질긴 설명 결과 미 측은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추가적인 시장 개방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 앞으로 검역 절차 개선, 자동차 안전 기준 동등성 인정 상한 폐지 등을 포함해 기술적 사항에 대한 협의도 계속 이뤄질 것"이라며 "오늘 큰 틀의 합의는 마쳤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미측과 추가 협의를 통해 채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앞으로도 여러 가지 관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무역 상대국의 비관세 장벽에 대한 압박이 계속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 성과로 우리 기업 불확실성이 해소된 측면이 있는데 안심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 시장 다변화 등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한편 우리 정부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는 앞서 대미 관세협상을 타결한 일본(5500억 달러)과 유럽연합(EU·6000억 달러)보다는 적지만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보면 이들보다 한국의 투자 규모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과 EU에 대한 미국 상호관세, 자동차 품목관세도 15%로 한국과 동일하다. 단 일본·EU 자동차는 이미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었기에 당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관세였던 한국 자동차는 이들 국가 대비 자동차 가격경쟁력 우위가 사라졌다.
구 부총리는 "(이번 타결로) 우리 기업의 전 세계 수출 19%를 차지하는 대미 수출 부담이 상당 부분 완화될 것"이라면서 "한미 FTA가 체결된 우리에게 관세 15%는 도전적일 수 있지만 우리 기업들의 창의성과 경쟁력이 발휘된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번 통상 협상에서 환율 관련 논의는 없었다. 환율은 양국 재무당국 간 별도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이번 관세 협상과 환율이 무관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날 오전(현지시간) 예정된 구 부총리와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의 면담은 이날 협상 타결로 취소됐다. 정부 협상단은 조만간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한편 양국은 이날 큰 틀의 협의는 마쳤지만 조선협력 패키지 후속조치 등 이번 협상 관련 세부 내용은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미가 이번 협상 과정에서 2주 내 정상회담 개최에 공감대를 모은 만큼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상견례를 전후로 협상 세부 내용이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