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소멸시효 지났다면⋯채무 인정했다고 갚아야 하는 건 아냐”

입력 2025-07-2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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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합, ‘시효 완성 후 시효이익 포기’ 종전 판례 58년 만에 변경

大法 “소멸시효 완성 후 시효이익 포기인지는 별도 판단해야”

“채무자가 시효완성後 채무 승인하더라도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어”

채무자에 불리하게 치우쳤던 심리 구조
공평하게 바로잡고 구체적 타당성 도모

채무자가 채권 소멸시효가 지난 뒤 채무를 인정했다고 곧바로 빚을 상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58년 만에 이뤄진 판례 변경으로, 대법원은 1967년부터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를 승인했다면 시효 완성에 따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판결을 내려왔다.

▲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입정해 있다. (사진 제공 = 대법원)
▲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입정해 있다. (사진 제공 = 대법원)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24일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 일부를 변제한 행위가 시효이익 포기에 해당하는지 문제된 사건에서 기존 판례 입장에 따른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이날 대법 전합은 A 씨가 B 씨를 상대로 제기한 ‘배당 이의의 소’에서 A 씨에게 일부 패소 판결한 2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관 8명의 다수 의견에 따른 결론이다.

민법상 금전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 완성으로 소멸하게 돼 있다. 하지만 법원은 3년의 소멸시효가 지난 뒤에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돈을 일부 갚는다면 채무자가 소멸시효가 이미 끝난 사실을 알고도 그 이익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추정하는 판례 법리를 유지해 왔다.

이번 사건에서 A 씨는 2006~2015년 B 씨로부터 4차례에 걸쳐 2억4000만 원을 빌렸다. 2006년 3000만 원, 2009년 9000만 원, 2011년 2000만 원, 2015년 1억 원 등이다. A 씨는 2015년께 B 씨에게 빌린 돈 일부인 1800만 원을 갚았다. 이 당시 2006년과 2009년에 빌렸던 제1‧2차 차용금에 대해서는 이자채권 소멸시효가 도과한 상태였다.

1심에서 소멸시효를 두고 다툼이 없었던 반면, 2심에 가서는 소멸시효가 쟁점이 됐다. A 씨는 2심에서 일부 패소 취지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종전 법리를 근거로 A 씨가 2006년‧2009년 빌린 돈에 관한 이자를 내야 한다고 봤다.

원심은 전체 차용금 2억4000만 원 가운데 1800만 원을 원고가 피고에게 일부 갚은 행위를 시효 소멸 이후 ‘채무 승인’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대법 전합은 이날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하면서 종래 판례 태도를 바꿨다. 전합은 채무자가 시효 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더라도 이로써 시효 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2차 차용금 이자채무에 대한 시효이익 포기가 아니라는 해석으로, 시효이익 포기 여부는 개별 사안에 존재하는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 조희대(가운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선고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대법원)
▲ 조희대(가운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선고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대법원)

“시효이익 포기 의사는 제반 사정 종합해 합리적 판단해야”

채무자에 ‘추정 번복’ 부담 줘 불리한 지위 놓여
채무 승인‧시효이익 포기 차이 충분히 고려해야

대법원은 “A 씨가 채권 소멸시효가 끝난 이후에 빚을 일부 갚았다고 해서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했다’고 추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기존 대법원 판례의) 추정은 경험칙으로 뒷받침되지 않거나 오히려 경험칙에 어긋나고, 채무 승인과 시효이익 포기의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기존 대법원 판례의 추정은) 권리나 이익의 포기를 엄격히 해석하는 일반적 원칙과 부합하지 않고, 채무자에게 추정을 번복할 부담을 부과함으로써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한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도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했는지는 개별 사안의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일반인의 상식과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웠던 획일적인 추정 법리를 폐기하고, 원칙으로 돌아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도 그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했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판단하도록 함으로써, 채무자에게 불리하게 치우쳤던 심리 구조를 공평하게 바로잡고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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