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6·27 대출규제를 시행한 이후 서울 아파트 전세 세입자들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비율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한도가 줄고 심사 기준이 강화되면서 세입자들이 신규 전셋집으로의 이동 대신 기존 거주지에 머무르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분석이다.
24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자료를 집계한 결과, 대출규제가 시작된 6월 28일부터 7월 21일까지 24일간 체결된 서울 지역 아파트 전세 계약 6660건 중 1878건(28.2%)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이 행사됐다. 이는 대출규제 시행 직전 같은 기간(6월 4~27일) 사용률 24.1%(2314건) 대비 4.1%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가 한 차례 2년의 계약 연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최장 4년(2년+2년)까지 거주를 보장한다. 2020년 도입된 이후 주거 안정 수단으로 활용됐지만 최근에는 이사비용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현실적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수치 상승은 대출규제 강화에 따른 세입자의 ‘이동성 위축’ 신호로 풀이된다. 새로운 전셋집으로 이사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 세입자들이 계약 갱신을 선택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6·27 대출규제를 발표하면서 이달 21일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수도권 및 규제지역의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기존 90%에서 80%로 낮췄다. 예를 들어 보증금 5억 원짜리 전셋집에 들어갈 경우, 종전엔 최대 3억60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지만 규제 이후엔 3억2000만 원으로 4000만 원이 줄어든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예전처럼 보증금 대출이 넉넉하게 나오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전세 이사를 준비하던 수요가 줄었다”며 세입자들이 움직이기보단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세 이동성 위축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당국은 전세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성 전세대출은 DSR 산정에서 제외되지만 집값 안정 기조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이자 상환액’부터 우선 편입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전세대출 원금을 임대인 DSR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를 직접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전세대출을 DSR에 포함하는 방안이 현실화되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대출 접근성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시장 유동성 위축과 맞물려 전세 이동성 둔화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규제 정책이 실수요자에게까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권일 리서치팀장은 “현재 정부는 갭투자를 막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결국 실수요자들도 계약 만료 이후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며 “그 사이 전셋값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규제는 오히려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