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제공동체, EU처럼 키워야…데이터 협력이 생존 전략”
“550조 트럼프 펀드, 흥분 말고 진의 파악부터…RE100은 현실과 가격 봐야”
“지금도 우리 제조업은 퇴출 위기 직전입니다. 인공지능(AI)으로 살려야 합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17일 경주에서 열린 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제조업 위기와 인공지능(AI) 전환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최 회장은 “중국의 추격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며 “지금이라도 AI를 기반으로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지 않으면 10년 안에 도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2000~2010년대 중국 성장 덕분에 수출 호황을 누렸지만, 그 이후 10년은 전략 없이 제자리걸음만 했다”며 “이제는 제조업의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데이터와 기술 역량이 부족한 한국은 일본과 손잡아야 글로벌 AI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일본과 경제공동체 수준의 협력을 구축한다면 유럽연합(EU)처럼 확장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며 “일본이 경제 안보를 중시하는 만큼, 우리가 먼저 실익 중심의 접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만난 일본 정계와 재계 주요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반대 의견은 들은 적이 없다”며 “서로에게 더 나은 옵션이 없다면 이 협력이 유의미한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최 회장은 AI 인프라 확대와 인재 육성을 제조업 생존 전략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그는 “AI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우리는 지금도 준비도 느리고, 스피드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SK그룹이 울산에서 구축 중인 AI 특화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로, 2027년부터 본격 운용될 예정”이라며 “울산뿐 아니라 호남 등 전국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에선 아직 AI 훈련용 데이터센터를 직접 구축하고 운영해본 기업이 거의 없다”며 “실제 돌려보며 경험을 쌓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AI용 GPU 시간과 인프라를 스타트업·중소기업에 공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AI 기술이 대기업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모두의 AI’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 시장 발주와 공공 프로젝트 창출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정부가 시장을 먼저 만들어줘야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도 따라온다”며 “우리 목표는 AI 전사를 2만명 키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초중고 AI 교육 의무화에 대해서는 “그건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아이디어”라며 “나는 대학부터 필수 과목화하는 것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보도된 트럼프 정부의 ‘550조 펀드 조성’ 요구에 대한 질문에 최 회장은 “흥분할 이유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정확한 조건이나 운용 주체, 시한 등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성급한 반응은 금물”이라며 “상대도 급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 “한국은 이미 미국에 가장 많이 투자한 국가이고, 특히 그린필드 방식의 투자로 무역흑자를 내왔다”며 “투자가 유리하면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런 요구가 나온 배경과 구조를 먼저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100 산단 입주 여부에 대해서는 “좋은 의도지만 에너지 가격이 비싸면 기업은 버틸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국은 태양광 전기가 다른 전기보다 싸기 때문에 RE100이 맞지만, 한국은 아직 아니다”며 “RE100보다 폭넓은 ‘CFE(탄소중립 에너지)’ 접근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등 정부 입법에 대해선 “무조건 반대하기보단 대응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기업에 불리한 조치를 취하더라도 다른 규제를 완화해 트레이드 오프하는 방식도 있다”며 “기업 성장에 필요한 법·제도 개선을 병행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상법 개정과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엔 “자사주 매입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긍정적 효과를 낳을지는 더 따져봐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