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넘어야 하는 허들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안전성과 효과성을 담보하기 위해 다수의 임상시험과 최종적인 품목허가를 철저히 관리해야 하지만, 각종 인허가 절차가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역효과는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일 바이오헬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규제 선도 기관으로 꼽히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신약 허가 심사 기간을 1~2개월로 단축하는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지난달 17일 발표된 국가 우선순위 바우처(CNPV) 프로그램은 미국 국민 건강 이익을 증진한다는 취지로 최종 의약품 허가신청서 제출 이후 심사 기간을 기존 10~12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 표준 검토 시스템과 달리, 각 FDA 사무실의 전문가들을 소집해 팀 기반 검토가 진행된다.
모든 기업이 CNPV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FDA는 △미국의 보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지 △미국 국민에게 더욱 혁신적인 치료법을 제공하는지 △충족되지 않은 공중 보건 요구 사항을 해결하는지 △국가 안보 이슈로서 미국 내 의약품 제조를 확대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기업의 자격을 평가한다. 또한 기업들은 최종 신청서를 제출하기 최소 60일 전에 신청서 일부분을 미리 제출해야 하며, CNPV 검토 기간 동안 FDA에 신속히 응답해야 한다. FDA는 기업이 제출한 데이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면 검토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
중국 역시 미국과 바이오 패권을 다투며 획기적인 절차 단축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은 혁신 신약 임상시험 신청에 대한 검토 기간을 기존 60영업일에서 30영업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가적인 핵심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긴급한 수요를 충족하며 국가 제약 산업의 발전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NMPA 역시 단축 심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우선순위 기업을 까다로운 조건에 따라 판별한다. 우선 국가가 지원하는 핵심적인 혁신 신약으로, 임상적 가치가 뚜렷해야 한다. NMPA 산하 약물심사센터의 소아 의약품 프로그램 및 희귀질환 관리 프로그램에 선정된 품목인 경우에도 우선순위가 될 수 있다. 중국이 포함된 글로벌 다기관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거나, 중국 연구진이 주도하는 글로벌 다기관 임상시험도 우선순위 대상이다.
글로벌 시장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기술이전과 신약허가 등 최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내며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다만 미국과 중국 등 대규모 자본과 거대 기업들을 보유한 국가들과의 패권 경쟁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성과를 내며 자리를 지키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한국의 전 세계 제약사 주도 의약품 임상시험 점유율은 2021년 6위, 2022년 5위, 2023년 4위로 상승 추세에 있었지만, 2024년에 6위로 두 계단 하락했다. 도시별 점유율 순위 역시 서울이 2017년 이후 계속 1위를 차지했지만, 2024년 베이징에 1위를 내주고 2위로 하락했다. 중국은 2015년이 돼서야 외국 기업의 의약품에 대한 다국가 임상시험을 허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이 늦깎이 후발주자에 역전당한 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규제 혁신을 거듭하며 심사 기간 단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신약 허가‧심사 혁신 프로세스를 시행해, 신약 제조소에 대한 제조및품질관리(GMP) 평가 와 실태조사를 허가 접수 후 90일 이내 실시하고 있다. 또한 허가 신청부터 허가증 발급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기존 420일에서 295일 이내로 줄였다.
임상시험계획 역시 ‘의약품 임상시험 계획 승인에 관한 규정’에 따라 기업이 제출한 자료에 문제가 없으면 30일 이내에 승인을 통보한다. 자료가 충분하지 않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30일 이내에 기업에 보완을 요청한다. 바이오의약품 임상시험 신청 검토를 기준으로 미국 FDA는 30일, 유럽의약품청(EMA)은 60일에서 최장 106일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현행 국내 기준은 뒤처지지 않는 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규제와 각종 절차를 선진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물론, 기업들도 규제와 인허가 대응 역량에 지속해서 투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의약품 및 의료기기는 사용자인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상품인 만큼, 기업 편의를 위해 무제한 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기란 불가능하다. 품목허가 후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한 제품에서 부작용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을 차단하려면, 보수적인 시각으로 규제와 절차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효율적인 서류 작업을 줄이고 규제기관과 기업의 역량이 동반 성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권지연 KFDC규제과학회 이사(동국대학교 의료기기산업학과 교수)는 “제도적인 수준만 놓고 보면 한국이 해외 선진 기관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는 편이다”라면서도 “기업들이 실제 신청서 접수를 완료하기까지 복잡한 절차와 서류 제출 및 보완 작업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진단했다.
권 이사는 “식약처라는 국가 기관은 국민 건강을 우선시해야 하므로 인허가에 있어 보수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기업들이 인허가 전문가(RA) 인력을 확보해 선진적인 기준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역량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결국 규제기관과 산업계 모두의 투자가 필요한 문제”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