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기업들이 추론형 인공지능(AI)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한국의 소버린 AI(AI 주권)가 본격적인 2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인재·인프라·데이터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며 AI 패권 경쟁을 주도하는 가운데 한국도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독자적 AI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첫 AI 추론 모델인 LG AI연구원의 ‘엑사원 딥’과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씽크’, 업스테이지의 ‘솔라 프로 2’가 공개된 데 이어 SKT도 모델을 공개하며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소버린 AI 구축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들은 자사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질의응답 서비스, 고객 상담 AI, 비즈니스 특화 솔루션 등 상용 서비스에 자체 추론형 모델을 적용해 글로벌 대형 모델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산업 전반의 AI 자립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정부도 소버린 AI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6월 20일 울산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에서 “‘챗GPT가 있는데 소버린 AI를 왜 개발하느냐 낭비다’라는 얘기는 ‘베트남에서 쌀이 많이 생산되는데 뭐 하러 농사를 짓느냐 사 먹으면 되지’라는 주장과 같다”고 비유했다. AI가 단순한 기술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 주권과 산업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인공지능(AI) 3대 강국'을 1호 공약으로 내세운 이재명 정부가 소버린 AI를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데이터·기술 주권을 지키고, AI 기반 산업·민생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판단이다.
소버린 AI는 한국의 데이터와 언어를 기반으로 국가 주도로 개발·운영되는 AI 기술이다. 보안과 전문성이 필수적인 국방·공공, 의료·제약, 제조업·콘텐츠 분야에서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확보하지 못하면 글로벌 빅테크의 모델에 의존해 데이터 주권을 잃고 기술·서비스 협상력도 약화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제도 적지 않다. 국내 AI 업계 관계자는 “추론형 AI는 모델 개발 못지않게 상용 서비스 구현에서 핵심 경쟁력이 좌우된다”며 “한국이 클라우드·반도체 인프라까지 확보하지 않으면 소버린 AI 완성까지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향후 5년간 국비 30조 원, 지방비 5조 원 등 총 35조 원을 투입하고 민간 투자 65조 원을 포함해 100조 원 규모의 AI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한국형 대규모 언어모델 개발에 집중해 AI 시대의 플랫폼 독립을 꾀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공들여 추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와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특히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에 이어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까지 네이버와 LG에서 소버린 AI 개발을 주도한 기업 출신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잇따라 발탁된 것은 기술과 산업 현장을 아는 인재를 통해 관료 중심 정책의 한계를 넘어 실질적 개발 역량을 정부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와 민간의 소버린 AI 구축 속도가 향후 글로벌 AI 생태계 내 한국의 입지와 산업 주권 확보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