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은 2023년 7월, 제2금융권인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이 자금조달에 중대한 어려움이 발생할 경우 유동성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법적 근거는 한국은행법 제80조였다. 이 조항은 대출 대상 범위를 ‘영리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은행(및 은행지주회사)만을 금융기관으로 규정한 현행 법 체계 내에서, 한국은행이 비은행권까지 지원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또한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줄 때 담보로 요구하는 자산의 범위도 대폭 확대했다. 당시 한국은행은 보도자료를 통해 “금융시장 안정의 안전판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취지 자체는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문제는 돈을 빌려가는 금융회사에 대한 정작 한은의 감독권은 미약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대출제도 개편을 발표한 지 3개월 만에 금융감독원과 '비은행예금취급기관 금융정보 공유'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정기 보고서뿐 아니라 개별적으로 입수한 정보까지 공유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와 당시 이복현 금감원장이 직접 업무협약식에 나섰다. 그러나 이는 결국 한은이 금융회사에 자금을 빌려주면서, 그 회사에 대한 정보는 타 기관을 통해 들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 셈이다.
현행 한국은행법에도 금융기관에 대한 일부 제한된 검사 권한은 있다. 제5장에서 자료제출 요구(제87조), 금융감독원에 공동검사를 요청할 수 있는 조항(제88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 금감원이 준수하는 '금융기관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과 비교하면, 장부 봉인, 진술 요구 등 검사원이 갖는 실질 권한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최근 한은 내부에서는 “그때 은행감독원을 떼어놓지 말았어야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는 말까지 들린다. 은행감독원은 과거 한국은행 내부에 설치돼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업무를 수행했던 기구다. 1999년, 정부는 은행·보험·증권감독원과 신용관리기금을 통합해 금융감독원을 출범시켰다.
지금처럼 디지털 뱅크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종대부자로서의 한국은행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실시간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동적 감독 권한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과거 은행감독원 시절을 떠올리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재명 정부의 5년 국정운영 청사진을 마련할 국정기획위원회(국정기획위)가 본격 가동됐다. 사실상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며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강도 높게 점검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도 국정기획위 앞에 선다. 시장에서는 이 시점에 맞춰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원회 출범 이후 17년간 유지돼온 현행 금융감독체계에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5년 현 시점에서 논의할 금융감독체계 개편에서 한국은행의 감독 권한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돈을 빌려주는 기관이 차주의 상태를 다른 기관의 정보로만 파악해야 하는 현재 시스템은 개선돼야 한다. 최종대부자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에 걸맞은 감독과 판단의 권한이 수반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