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번화가엔 손님 없고 공실만
자영업자들 “근로자 사라지며 생계 타격”
“대기업 협력사 직원 3만명…지역경제 위태로워”

한때 ‘전국에서 월급 가장 많이 받는 도시’. 2009년 당시 일반 직장인보다 웃도는 월평균 281만 원의 급여를 자랑하던 여수의 타이틀은 옛말이 됐다. 길어지는 석유화학 산업 불황이 도시 전체를 움켜쥐었다. 공장 가동이 멈추자 사람도, 돈도 빠져나갔다. 남은 건 불 꺼진 상가와 ‘임대’ 스티커뿐이다.
지난달 28일 찾은 전남 여수 무선지구. 한낮임에도 인적은 드물고 거리는 썰렁했다. 대로변을 따라 있는 상가들은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공실이었다. 삼겹살집도, 생연어 전문 초밥집도 미처 떼지 못한 간판과 글씨 스티커를 남긴 채 떠났다. 줄지어 붙은 임대 전단과 빈 점포. 대로변 상가 열 곳 중 넷은 셔터가 내려앉았다. 불 꺼진 공인중개사 사무소 앞에 선 한 자영업자는 빌라를 가리키며 “저 빌라만 해도 방 세 개 중 두 개는 비어 있다. 이 근방 다 그렇다고 보면 된다”며 “부동산도 재미를 못보니 문을 닫았다”고 설명했다.
무선지구는 여수산단 노동자들의 주거지이자 주요 소비 동선. 여수 경제의 실핏줄 같은 곳이다. 하지만 한참 분주해야 할 점심시간조차 썰렁했다. 백반집 업주 김모 (65)씨는 종업원과 나란히 앉아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손님은 단 한 팀. 5개 테이블이 빈 채 방치돼 있었다.
김 씨는 “무선지구는 관광객이 없고, 여수 산단 근로자에 의존하는 곳이다. 보이는 그대로 이 근방에 사람이 없다”며 “예전엔 공단 사람들로 새벽 3~4시까지 장사했지만 이제는 밤 9시도 안돼 문을 닫는다”고 한숨지었다. 이어 “여긴 들어오는 사람 없고 나가는 사람만 남았다”고 했다.

인근 고깃집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40평 홀이 텅 빈 채 업주 혼자 서 있었다. 그는 “산단이 잘 될 때는 많이들 모여 회식도 하고 우리도 덕분에 장사가 잘됐다”면서 “지금은 회식은 커녕 야근도 없어 늦게 까지 문 열 이유가 없다”고 털어놨다. 산단과 직결된 자영업자 타격은 더 크다. 공단 소모품을 판매하며 건재 납품을 25년째 해 온 자영업자 이 모(60)씨는 “매출이 3분의 1토막 났다”면서 “단골들이 일감을 찾아 울산 온산국가산단, 대산산단으로 간다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무선지구는 여수 주요 상권 4곳 중 한 곳이다. 여수산단 노동자의 주거지와 식당가가 밀집해 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여수에 일을 찾아 온 일용직 근로자들로 방을 잡기 어려웠다. 여수산단에서 일하는 공장과 협력사 임직원들의 주머니는 두둑했고 회식은 2차, 3차까지 이어져 소주를 기울인 뒤에야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석유화학 산업은 수요 둔화, 중국·중동발 과잉 공급으로 장기 침체에 빠졌다.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여수산단 공장들은 최근 일부 공정 가동을 중지했다. LG화학 여수공장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일부 사택 매각을 검토하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대기업 일감이 줄어들자 그 여파는 협력업체로 도미노처럼 퍼졌다. 성과급, 상여금뿐만 아니라 시간 외 수당도 줄었다. 한때 사측에서 소비 촉진을 위해 지원했던 회식비가 끊기자, 회식도 자연히 사라졌다.
여수 학동의 상황도 비슷하다. 산단 근로자 수요가 사라진 자리를 시청·법원 등 관공서 수요가 겨우 채우는 실정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남 여수 학동의 집합상가 공실률은 19.64%에 달했다. 전분기(18.26%) 대비 1.38%포인트(p) 올랐다. 전국 평균 집합상가 공실률 10.32%의 두 배 수준이다. 학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모(62)씨는 “여긴 산단이 먹여 살리는 동네다. 그런데 방이 1~2년씩 비는 건 예사고 3년 넘게 공실로 남은 곳도 많다”고 읍소했다.
여수의 또다른 상징 같은 흥국상가도 붕괴 중이다. 40% 가까운 점포가 문을 닫았다. 상가 이정표처럼 쓰이던 ‘권리금 5000만 원’ 전성기도 옛말이다. 김미화 흥국상가 상인회장은 “지금은 권리금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한다”며 “그냥 들어오면 다행”이라고 했다.

외식업계 타격은 치명적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여수시지부에 따르면 여수 전체 음식점 5010개 중 1000여 곳이 휴·폐업 상태다. 김종태 한국외식업중앙회 전남지회 여수시 지부장은 “산단 근로자들이 밥도 먹고 술도 먹어줘야 돈이 도는 건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2차 문화 자체가 사라졌다”고 어려운 상황을 대변했다.
이 같은 위기는 공장 가동 중단에서 시작됐다. 여수산단의 대기업인 롯데케미칼, LG화학은 일부 공정을 중단하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LG화학은 사택 일부 매각까지 검토 중이다. 대기업 타격은 곧 협력사와 하청업체로 전이됐다. 성과급, 상여금은 물론 초과근무 수당도 사라졌다. 한때 사측이 비용을 댔던 회식도 끊긴 지 오래다.
여수시는 석화산업 침체로 4월 고용노동부에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신청한 상태다. 지정되면 고용유지 지원금, 직업훈련 지원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이 뒤따르게 된다. 이계명 전라남도석유화학산업위기대응추진단장은 “대기업 공장이 문을 닫고, 가동을 줄이는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직결된 협력사 종업원만 3만 명”이라며 “산단이 흔들리면 지역경제 전체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