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제조업 생산성 저하와 인력난 이중고
계속 고용 제도 마련으로 인력·생산성 유지
중소·중견기업의 디지털 전환 지원해야
비자 제도 개선 통한 숙련 외국인 인력 확보 필요

제조업 현장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에서는 제조업 근로자의 평균 연령도 해마다 가파르게 높아지는 중이다. 고령 근로자가 많아지면서 산업의 활력은 급격히 떨어지는 추세다. 나이든 일손은 늘고 있지만 청년층 유입은 급감, 생산성 저하와 인력난이라는 이중 위기가 산업 현장을 동시에 덮친 형국이다. 기술 전수가 끊기면서 뿌리산업은 세대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지방 중소 제조업체들은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전문가들은 “고령화로 인한 제조업 생산성 저하나 인력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지금 대응하지 않으면 숙련 공백과 기술 단절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중소기업 의 디지털 전환 촉진, 고령자의 디지털 역량 강화, 유연한 외국인력 수급 시스템, 직무 재설계 등을 통한 계속 고용 등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해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고령 근로자의 생산경험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노동 강도와 역할을 재조정하는 방식의 ‘계속 고용’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단순히 근무 시간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고령화의 숙련 기술과 경험이 이어질 수 있도록 고용 구조를 재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4일 김천구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연구위원은 “현재 고령 인력은 과거와 달리 고숙련·고학력 비중이 높아 학습 능력도 우수하다”며 “이들의 축적된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지원하고 고령자 모두에게 교육과 훈련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되 자기 계발 의지가 높은 사람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 개발도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본부장도 “고령 근로자의 계속 고용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면서 “당장은 기업 입장에서 인건비 부담이 늘고 사회보험의 손실 등이 있을 수도 있지만 계속 고용은 결국 생산성 증대로 이어지고 국가 세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소기업은 자동화가 어렵고 청년 인력 확보도 힘든 만큼 계속 고용은 유일한 현실적 선택지”라면서도 “청년 일자리와의 충돌을 막기 위해 근로시간 조정과 임금 구조 재설계가 병행돼야 한다”고 절충적 접근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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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령층은 전문성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품질관리·교육직 등으로 전환하고, 생산과 개발·기획 등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분리해 채용할 필요가 있다”며 “세대 간 역할 분담을 통해 일자리 충돌을 최소화하고 숙련 기술의 단절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령 근로자의 계속 고용도 중요하지만, 제조업에 대한 청년층의 유입 없이는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청년들이 제조업을 기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제조업 유입을 위해서는 임금, 근무환경, 사회적 인식 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대종 교수는 “청년층 유입을 확대하려면 임금 수준을 상향 조정하고 성과 중심의 보상체계를 도입이 필요하다”면서 “작업환경 개선과 복지 시스템 도입 같은 근무 여건 개선과 함께 제조업이 ‘3D’ 업종이라는 인식을 바꾸는 교육·홍보도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년 대상 현장 체험 프로그램 운영, 마이스터고·폴리텍대와의 연계 채용 시스템 등을 통해 실제로 제조업에 발을 들여볼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조업 생존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또 하나의 축은 ‘디지털 전환’이다. 자동화, 스마트공장 도입 등으로 인력을 대체하거나 생산 효율을 높이는 움직임은 대기업에서 이미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디지털 전환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소 제조업, 특히 뿌리 산업의 디지털화가 시급하다”며 “정부가 숙련 인력의 암묵지를 데이터화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는 데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대종 교수도 “반복·위험 작업은 기계가 대체하고 고령 근로자는 관리·감독 역할로 이동시켜 노동 강도를 줄이는 업무 재배치 구조가 필요하다”면서 “정부 보조금 확대와 민관 컨소시엄 기술지원 등 현실적인 전환 프로그램도 절실하다”고 피력했다.
제조 현장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고령 근로자의 디지털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천가현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고령 노동자는 숙련도와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산업 환경에서는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받지만,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재 환경에서는 적응 속도가 다소 느려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 활용을 통해 고령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고령 근로자들의 디지털 활용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핵심 과제”라며 “단순히 인터넷 활용이나 스마트폰 교육에 머무는 게 아니라, 산업별 특화 기술에 대한 맞춤형 교육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심화하는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외국인 인력 유입 확대도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단순 노동력 중심에서 벗어나 숙련 인력 중심의 전략 전환이 핵심이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외국인력 비자 제도는 직종과 체류자격이 지나치게 촘촘하게 세분화돼 있어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분절화된 외국인력 관리 체계를 통합해 노동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김대종 교수는 “단순노동 인력뿐만 아니라 숙련 외국인 인력의 확보가 중요하다”며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비자 제도의 확대, 근로조건과 숙소·복지 환경 개선 등을 통해 고숙련 외국인의 유입과 장기근속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부족한 일손을 모두 외국인으로 채우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 본부장은 “뿌리 산업의 경우 제조업 전반을 지탱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부 외국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국가 성장과 경제 안보 측면에선 부정적”이라며 “외국인 비중을 얼마나 가져갈지 정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