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약품 관세정책에 따른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시장 환경이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제품에 유리한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어 한국 기업들의 미국 현지 생산거점 확보 여부가 중요해졌다.
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서명한 의약품 제조 촉진을 위한 행정명령에 의해 향후 2주 내 의약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가 발표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 가격과 관련해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불공정하게 갈취당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관세 인상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조치에 따라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제품이 가격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행정명령에는 해외 의약품 제조시설에 대한 검사 수수료 인상, 외국 제약업체의 유효성분 출처 보고 시행 개선 및 미(未)준수 시설 명단 공개 검토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식품의약국(FDA)에 미국 내 제약 공장을 짓는데 걸리는 승인 시간을 단축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는데, 해외 기업들의 미국 내 시설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은 2021년부터 4년째 한국산 의약품이 가장 많이 수출된 국가다. 실제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의약품 수출액 92억6700만 달러(약 12조9432억 원) 중, 미국 수출액은 14억9000만 달러(약 2조818억 원)로 전체의 16.1%에 해당할 만큼 비중이 크다. 전 세계적으로도 미국은 주요 의약품 시장으로 꼽히는 만큼 한국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 가운데 미국에 자체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기업은 드물다. 위탁개발생산(CDMO)이 주요 사업인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현지법인 롯데바이오로직스USA를 두고, 2022년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 있는 BMS의 공장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이에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우선 업계는 현지 생산시설 구축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과 준공 시간을 고려하면, 기업들은 미국 내 위탁생산(CMO) 파트너사를 활용해 대응하는 것도 한 방안으로 꼽힌다.
셀트리온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현재 약 15개월분의 재고 이전을 완료해 내년 상반기 판매분까지 관세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시킨 상황”이라면서도 “중기적으로 미국 현지 CMO 업체를 통한 완제의약품 생산 계약을 완료했으며, 미국 현지 원료의약품 생산시설 확보를 위한 예비 검토를 끝내고 상세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셀트리온은 FDA에서 총 9개 바이오시밀러 허가를 받아 7개 제품을 출시해 셀트리온USA를 통해 직접판매하고 있다.
SK바이오팜도 자체 개발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 생산기술을 미국 CMO 기업에 이전한 후, 생산설비에 대한 FDA 승인까지 마쳤다. SK바이오팜은 “CMO 업체를 통한 외주 생산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 직접 생산 대비 탄력적이고 빠른 대응에 유리하다”고 했다. 또한 미국 내에 약 6개월분의 재고물량을 확보해 관세 변화 대응에 걸리는 기간 동안 해당 물량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기업들은 재고 확보와 CMO 등 단기적 대응 전략을 구사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행보를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수입 의약품에 불리한 환경이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거점, 현지 기업과의 협업을 강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이날 글로벌 이슈체크 보고서를 통해 “최근 미국 의약품 제조 시설 관련 심사 간소화 및 환경 규제 완화 움직임은 미국 내 제조 시설 구축의 행정적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대응 방향으로 “미국 시장 진출을 계획 중인 국내 기업들은 수출 및 현지 생산 등 다양한 진출 방식에 대한 정보 접근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시하고 “미국 시장에 수출 및 진출하는 국내 제조시설의 품질관리와 규제 대응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제약바이오협회는 “미국 정부가 자국 내 생산 제품을 중심으로 공공조달을 확대할 가능성이 커지고, 현지 생산 및 공급 체계 확보와 품질 인증 수준이 전제된다”라며 “미국 시장 진출 시 인증·허가·조달 프로세스를 포함한 제도 변화에 대한 정보 확보와 지원 등 긴밀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