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로 국민의힘에선 단일화 협상으로 관심이 쏠린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단일화’는 당선의 당락을 좌우하는 최대 변수로 꼽혀왔다. 주로 야권이나 비주류 진영에서 정권 교체나 정치적 승리를 위해 시도됐다. 최근 한 대행의 출마로 화두가 됐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도 대선을 25일 앞두고 이뤄진 2등과 3등 후보들의 ‘깜짝’ 선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대선 후보는 단일화 합의로 1위였던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꺾었다.

이외에도 성공 사례는 꽤 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자민련) 후보의 단일화로 이른바 ‘DJP 연합’이 형성됐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서 유일한 야권 단일화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사례다. 이를 두고선 호남과 충청, 민주개혁세력과 보수지역 기반 정당의 전략적 결합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다. 이 때문에 김대중 후보는 대선 도전 3수 끝에 이회창(신한국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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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때도 윤석열 전 대통령과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가 대선 투표 6일 전 극적으로 단일화에 성공, 대선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여의도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는 “당시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하지 못했으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집권을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격차는 0.7%포인트(p)에 불과했다.

하지만 단일화는 말처럼 쉽지 않다. 후보들 간 요구 조건을 맞추는 물밑 협상부터 단일화 이후 과정까지 알력 다툼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1987년 13대 대선에서 야권의 유력 후보였던 김영삼(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평화민주당) 후보는 단일화 실패는 보수 여당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승리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두 사람은 ‘누가 단일 후보가 될 것인가’를 두고 극심하게 대립했다. 그러다 같은 해 10월 29일 김대중 후보가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독자 출마를 선언하면서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완주하게 됐다.
19대 대선에서도 안철수(국민의당) 후보와 보수 후보 간 단일화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했고, 홍준표(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바른정당) 후보의 단일화도 실패하면서 보수 진영의 분열로 문재인 전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다.
심지어 성공한 사례도 불협화음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총리직에 임명됐지만, 집권 중반 이후 DJP 연합은 분열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 후보의 경우도 정 후보가 선거 전날인 2022년 12월 18일 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